지갑 여는 사람 늘었는데…‘동물복지 달걀’의 배신?[댕냥구조대]

사회

이데일리,

2025년 2월 22일, 오전 09:47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최근 들어 달걀을 소비할 때 껍질에 적힌 10가지 문자와 숫자 중 마지막 숫자(1~4번)를 확인하고 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3·4번에 비해 닭의 사육 환경 상태가 양호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1·2번 달걀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픽=동물권행동 카라)
관심이 커지면서 과연 이 1·2번 달걀이 정말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이 맞을지 궁금해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특히 비좁은 공간에 ‘에이비어리(다단형)’를 지어 닭들을 몰아넣고 2번을 받은 달걀이 동물복지라고 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문이 지속 제기 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얼마 전 정부, 국회, 동물단체, 업계, 연구단체 등 각계각층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1·2번’ 동물복지 달걀 구매 증가

지난 12일 국회에서 동물자유연대와 동물복지국회포럼이 공동으로 개최한 ‘산란계 동물복지 현황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고도은 마크로밀엠브레인 매니저는 동물복지 달걀 시장의 구매 빅데이터 및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서베이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동물복지 달걀만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2023년(3.4%)보다 2024년(4.2%) 증가했으며, 동물복지 달걀과 일반 달걀을 중복구매하는 사람들도 2023년 18.2%에서 2024년 21.9%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동물복지 달걀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 중 24%는 ‘동물복지달걀 판매처가 주위에 없어서’라고 대답해 동물복지 달걀이 있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값비싼 동물복지 달걀이 많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데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일반 달걀이 1만원이라면 동물복지 달걀에 1만 2000원까지는 지불 할 의사가 있으나, 현재는 1만 6000원에 육박해 너무 비싸다는 것입니다.

◇4번 닭, 부리 잘리고 평생 날개 한번 못 펴

그럼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구매하고 있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동물복지 달걀의 ‘동물복지’는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요?

우선 사육 상태를 판가름 하는 달걀의 마지막 난각번호(1~4번)의 의미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4번은 가장 최악의 사육 환경은 ‘기존 케이지’(사육밀도 0.05㎡)입니다. 4번이 찍힌 달걀을 낳은 닭들은 우선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립니다.

A4용지 절반 조금 넘는 면적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4번 닭들은 좁은 창살 사이를 비집고 사료를 먹거나 알을 낳다 보니, 닭들은 온몸이 쓸려서 깎인 털 사이로 맨살이 드러나기 일쑤입니다. 여기서 사육되는 닭들은 태어나서 도살되기 전까지 날개 한 번 펼칠 수도 없습니다.

4번 기존케이지로 옮겨지기 전 부리가 잘려지고 있는 병아리들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3번(사육밀도 0.075㎡)은 그나마 4번에 비해 개선된 케이지입니다. 4번에 비해 마리당 머무르는 공간을 조금 더 넓혔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좁아 날개 한번 펼 수 없는 것은 동일합니다.

2번으로 오면서부턴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2번 달걀하면 실내 평사에서 3, 4번 달걀 사육환경보다 넓은 공간에서 날개를 펼치며 보내는 공간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평사 사육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1층짜리 평사만 있는 곳과 4층까지 쌓여 있는 케이지의 문을 없애 1층 평사까지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한 일명 ‘에이비어리’ 시설이 있는 곳입니다.
서두에 언급했듯 바로 이 에어비어리 시설에 대해선 과연 동물복지가 맞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 제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난각번호 ‘4번’이 찍힌 닭사육장의 모습
◇2번 찍힌 에이비어리, 정말 동물 복지일까?

에어비어리 시설의 경우 닭 한마리당 보장되는 면적을 각 층의 케이지 면적까지 포함 시키다 보니 비좁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에어비어리에서 닭들이 사육되는 현장을 육안으로 보면 정말 이게 동물 복지가 맞나 싶을 정도의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어비어리의 닭들은 3·4번 사육 환경의 닭들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리지도 않으며, 평생 날개 한번 펴지 못한 채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지내지는 않습니다.

날개를 펴고 위아래로 날아다닐 공간이 확보가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닭들이 에어비어리의 횃대에 올라가 쉬는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이비어리 2번 사육장의 모습.(사진=동물권행동 카라)
물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실외에서 방사돼 햇빛과 바람을 쐴 수 있는 1번 사육환경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동물복지에 우리보다 앞서 있는 유럽의 경우에도 에어비어리 시스템의 농장들이 아직은 다수입니다.

특히 낮은 단가로 구매를 원하는 대기업에 달걀을 납품하는 농장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무조건으로 1번 사육환경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일부 대기업들은 동물복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아지면서 비용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농장에서 유럽형 에어비어리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빅더치만 에어비어리 시스템을 도입한 풀무원 역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 입니다.

실제 동물복지 달걀의 생산은 소비자 관심과 더불어 달걀을 대량 유통하는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동반돼야만 하는 게 현실입니다.

함영훈 풀무원 계란 사업부 CM의 경우 “아직 90%이상 케이지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복지를 우선하여 이들을 케이지에서 해방 시켜주는 것이 우선”이며,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비어리이든 평사이든) 케이지사에서 사육되는 달걀이 아닌 동물복지 달걀을 보편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동물자유연대와 동물복지국회포럼가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의실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산란계 동물복지 과제 모색 토론회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에어비어리 닭들 “만족, 편안함 느끼고 있어”

전문가들과 동물단체도 에어비어리 시스템의 단계적 접근에 대해 동물복지 향상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윤진현 전남대학교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행동학적, 신체적, 생리학적 변화 등 다양한 지표를 측정하여 통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케이지 사육(3·4번 달걀)이 에어비어리 시스템 사육(2번 달걀)에 비해 행동제약에 따른 산란계 복지복지 수준이 더 떨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이날 토론회에서 윤 교수의 발표내용을 보면 케이지사(3·4번 달걀)와 에어비어리사(2번 달걀)들의 감정분석결과에서 에어비어리사의 닭들이 만족감, 편안함, 행복감 등의 상태를 보였으며, 케이지사의 닭들은 지루함, 스트레스 등 부정 감정을 경험하는 결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또 케이지의 닭이 낳은 계란의 난황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이 2배 가까이 검출 에이비어리사와 케이지사에서 48주령의 닭이 낳은 계란을 비교했을 때 케이지에서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의 난황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코스테론)이 약 230pg/mg 검출된 반면, 에이비어리사에서 기른 닭이 낳은 달걀 난황에서는 약 120pg/mg 이 검출된 사실도 설명했습니다.

윤 교수는 “에이비어리 시스템의 경우 닭이 수직운동이 가능하고 서열싸움에서 도망치거나 쉴 수 있어 동물복지에 부합하며, 기존의 평사사육보다 더 많은 개체를 키울 수 있어 생산자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평사로 동물복지를 전환한 농가의 입장에서, 에이비어리 시설이 도입되며 소규모 농가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2023년 독일을 방문하여 산란계 동물 복지 농가를 조사했을 때 소유모 농장이 모두 에이비어리를 병행하고 있더라. 해외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는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 에이비어리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