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 또는 유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서울고법은 2023년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비슷한 취지로 낸 소송 2심에서 주권 면제 원칙을 이유로 각하한 1심을 파기하고 일본 정부가 2억원씩 배상하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길 할머니는 1924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17세이던 1941년 일본 나가사키 섬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 활동에 참여하며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일본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생전 “일본군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한 길 할머니는 급성 폐암으로 1998년 74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이후에는 길 할머니의 아들인 김씨가 일본 정부의 사과 등을 받기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청주지법의 이번 승소 판결은 김씨가 지난해 1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홍성호 변호사는 “일본 정부는 선고가 이뤄진 이날까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처음에 소장 송달도 거부해 재판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법상 주권 면제 원칙 적용이 부정됐다”며 전날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주권 면제는 주권 국가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일본 정부는 국제관습법상 이 원칙을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불응해왔다.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은 전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 판결과 2023년 11월 서울고법 판결은 언급하며 “일본은 한국에 대해 국가로서 스스로의 책임을 갖고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다시 강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도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한 바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장과 2015년 한일 외교 장관 간 ‘위안부 합의’ 등으로 위안부, 강제동원 등을 포함한 역사 문제가 해결됐다며 한국 사법부의 판단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