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기준 70세로 상향해야"…학계·시민단체, 첫 공식 제안(종합)

사회

이데일리,

2025년 5월 11일, 오후 06:52

[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현행 65세로 통용되는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사회적 제안을 발표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노인의 적정 연령에 대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이들은 연령 기준 상향이 노인 삶의 질 저하나 새로운 취약 계층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고용과 연금, 복지 등 각 제도별 설계가 유연하게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앞에 어르신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 이윤환 한국노년학회장 등 전문가 10명은 9일 중구 순화동 KG타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노인 연령 기준에 대한 사회적 제안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노인 연령 전문가 간담회를 시작으로 적정 노인 연령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공론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관련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자 전문가들이 자체적으로 입장을 정리해 제안문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연령 기준은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정한 경로우대 조항에 따라 65세로 통용되고 있다. 이에 경로우대제도, 기초연금 등 주요 노인복지사업의 대상 연령이 65세로 규정된 상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3일을 기점을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빠른 고령화로 인해 노인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고려해 노인 연령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다만 상향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나 어느 수준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상태였다.

이날 전문가들은 그간의 논의를 거쳐 노인 연령 기준은 70세가 적정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2년에 1세씩 올려 2035년까지 5세를 우선 상향하고, △노인의 건강 수준 △사회적 인식 △노년부양비 △경제 활동 참여율 등을 고려해 노인 연령 기준을 5년마다 주기적으로 검토·조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선언문은 “노인복지법이 제정된지 44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우리는 지속 가능한 복지 체계와 세대 간 공존을 위해 현행 만 65세 노인 연령기준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 인식을 같이하고, 현시점에서 인구 구조, 건강 상태 및 사회적 인식 등을 고려할 때 노인 연령은 70세가 적정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근거로는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인 1981년 66.7세였던 기대여명이 2023년 83.5세까지 증가했다는 데서 찾았다. 또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71.6세라는 점, 잔여 생존기간이 15년이 되는 시점을 노인의 시작 연령으로 정의하는 경우 1980년 62세에서 2023년 73세까지 증가한 것도 배경이 됐다.

선언문은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결혼과 출산, 은퇴 시기 등이 전반적으로 늦춰지면서 전통적인 생애주기도 변화하고 있다”며 “65세 이후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적극적인 사회 활동이나 경제활동을 계속하는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논의가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 빈곤율이나 불충분한 노후 준비 실태를 간과해 복지 축소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득 단절 기간을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된 일자리의 고용 기간 연장은 반드시 필요하며, 고령자에게 소득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제활동 참여 여건 정비와 연동해 연금 가입 및 수급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전반적으로 보면 고령자들의 고용 기간이 연장되더라도 다른 연령대의 고용에 큰 우려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같이 청년들이 취업을 선호하는 분야에서 청년층 고용이 감소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부 지원을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미 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에서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2033년에 65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2048년에 68세까지 올리자는 스케쥴을 제안한 바 있다”며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어서 수급 연령을 올리는 데 더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예컨대 2030년부터 66세로 상향 조정한다고 하면 소득 공백기 없이 조정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노인 연령 기준 상향 시나리오.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아울러 이들은 지하철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제도의 노인 연령기준을 상향하되 소득이나 재산, 지역 등을 고려해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령기준을 상향해도 보건의료와 장기요양서비스는 건강 상태와 돌봄 필요에 따라 보장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정순둘 교수는 “우리가 노인 연령을 70세로 상향하자고 제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세대에 대한 부양 부담과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 때문”이라며 “노인 인구는 늘어나고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기 때문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필요하며, 새 정부에서는 사회적인 합의와 제도적인 개선점 마련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