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위에 헌재?…'재판소원' 두고 대법·헌재 갈등 재현되나

사회

뉴스1,

2025년 5월 16일, 오후 05:26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왼쪽)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모습. ©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법원 판결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면서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갈등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헌재는 헌법심판 기관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재판소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법은 재판소원이 시행되면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이라며 재판 장기화로 국민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16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1소위에 회부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개정안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유를 규정한 헌재법 68조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해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도 헌재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현재 헌재의 심판 대상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 등에 한정되는데 이 범위를 법원 판결까지 넓히겠다는 취지다.

헌재는 즉시 "사법 작용으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고 법률적 구제 절차가 차단된 경우에까지 헌법재판 문을 닫아두는 것은 헌법소원 본질과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헌재는 더 나아가 개정안에 '기속력'을 명확히 해 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개정안에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관할법원에 환송할 경우 법원은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는 게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반면 대법원은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대법원이 반발하는 건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심급제도의 최고법원 위상이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판결 확정, 법률의 헌법 위반 여부 등을 판단하는 대법원 기능을 헌재가 맡게 돼 사실상 '최종 심판자' 역할을 잃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4일 법사위에 출석해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라며 "재판을 감당할 자력이 되는 유산자들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이 재판 과정에서도 도입된다"고 말했다.

재판 소원을 둘러싼 최고 법원 간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헌재는 1988년 출범 후 '한정위헌' 형태로 세 차례 법원 재판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그때마다 충돌이 빚어졌다. 한정위헌이란 법률 또는 법 해석에 대해서만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사실상 법원 판결을 부인하는 것이다.

1997년 헌재가 처음으로 재판을 취소하자 대법원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국가기관이 개입해 헌법소원이 취하됐다.

2022년 6월과 7월에도 재판을 취소했지만 대법은 "한정위헌 결정은 법원을 기속할 수 없고 재심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의 기틀을 마련하고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시윤 전 재판관은 2017년 7월 언론을 통해 "재판이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대법원은 크게 당황했다"며 대법원이 재판 배제를 관철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중요한 사법제도 개편에 보다 숙고가 필요하다는의견이다.

한 부장판사는 "9명의 재판관이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헌재가 재판소원을 맡을 수 있겠느냐"며 "상고 제도를 개편하려는 것이라면 장기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재판관이 16명인데도 90% 이상 사건이 재판소원"이라며 "헌재 재판관 증원이 필요한데 이는 개헌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ausu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