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조금만 놀게요” 운동회 전 사과...‘초품아’ 민낯

사회

이데일리,

2025년 5월 16일, 오후 08:28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5월을 맞아 전국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운동장에 모인 어린이들이 운동회 시작 전 학교 인근 주민들을 향해 단체로 사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씁쓸함을 안기고 있다.

한 초등학교의 운동회 시작 전 학생들이 인근 주민들에게 ‘소음’과 관련해 미리 사과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super_tiger_’ 캡처)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난 14일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는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라는 제목으로 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처음 게시된 영상과 글이 확산했다.

영상에는 운동장 중앙에 모여 선 아이들이 운동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한목소리로 인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아이들은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외친 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해당 영상을 올린 A씨는 “보호자들 참관도 없이 저들(아이들)끼리 노래 한 곡 틀지 않고 마이크 볼륨도 높이지 않은 채 오전 9시부터 딱 2시간40분 정도 했다”라면서 “100명 내외라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았다”라고 적었다.

이어 “운동회는 좀 하게 해 줍시다”라며 “초등학교 운동회에 그렇게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쪽으로 뒤돌아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시작하는 운동회가 참 씁쓸하다”고 썼다. 또 “나 때는 온 가족 출동해서 도시락 먹고 동네잔치 했는데”라며 “잘 놀아라, 얘들아”고 덧붙였다.

그는 “아이 키우며 사는 게 죄인이 된 것 같은 요즘에 최대한 바르고 건강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려고 부모들도 노력 중이니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 역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참 각박한 세상이다” “하루 시끌시끌하게 논다는데 왜 애들이 사과하느냐” “애들이 운동회 한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게 정상이냐. 씁쓸하고 짠하다” “애들 뛰노는 축제 소리도 시끄럽다고 하는 나라에서 무슨 저출산 문제를 논하겠나”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특히 일부 누리꾼은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최근 부동산 상황을 언급하며 “집값은 올라야 하지만 운동회 소리는 싫다는 거냐” “내로남불의 시대다. 초등학교는 가까워야 하지만 시끄럽지는 않아야 한다”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A씨는 “학군지 그런 곳 아니고 조용하고 다정한 동네”라며 “1~2학년 아이들끼리 한 운동회였고, 운동회하고 돌아온 아이가 ‘백군이 졌지만 정말 즐거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공감해주고 마음 나눠줘서 감사하다”고 마무리 했다.

한편 운동회 소음 등으로 학교에 민원을 넣는 사례는 빈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운동회를 앞두고 학교 측은 주변 아파트단지 등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배포한다. 또 소음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년별로 나눠 오전 시간대 2~3시간가량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등, 과거처럼 전교생이 함께하는 운동회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5월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 날 인근 빌딩에서 소음에 항의하다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22년 전북 전주와 2019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인근 아파트 주민의 민원으로 운동회가 축소 시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