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유족 제공)
'10·26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측이 재심에서 위헌적 수사·재판, 내란 목적이 없었다는 점 등을 들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 박주영 송미경)는 16일 김 전 부장의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김 전 부장의 변호인인 조영선 변호사는 "이 사건은 사법부의 치욕을 바로잡는 계기"라고 운을 떼며 항소 이유를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피고인의 행위를 사법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지 살펴봐야 한다. 또 피고인은 일관되게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했다"며 "사실상 6~7개월 만에 모든 형이 집행되는 유례없는 졸속 재판이었고 변호인의 접견권·조력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변호사는 △위헌적인 10·27 비상계엄에 따른 수사·공판 절차가 위헌이었다는 점 △사건 당시는 10·27 비상계엄 발령 전으로 김 전 부장이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군 수사기관·군법 재판을 받을 의무가 없었다는 점 △내란 목적이 없었다는 점 △유죄의 증거가 없다는 점 등 4가지 항소 이유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조 변호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윤석열이 다시 45년 전 김재규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비상계엄 포고령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이므로 보안사·경찰·군검찰 등 모두 민간인인 피고인을 체포·수사할 권한이 없고 군법회의 역시 재판 권한이 없다.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청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손오공의 여의봉 같은 비상계엄의 악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이를 보여준다"며 "1979년 사법부가 '이것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이 아니다'라고 밝혔다면 그런 역사가 반복될 수 있었을지 사법부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전 부장 측은 원심 법원에서 증거로 쓰였던 김 전 부장의 진술 조서, 함께 기소됐던 피고인들의 신문 조서, 원심 공판 조서, 참고인 진술 등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과거 김 전 부장을 변호했던 안동일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고 원심 공판 녹취 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지금 단계에서 항소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피고인 측 항소 이유 관련 여러 주장 대해 입증 계획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재판부는 "관심 사안인 분들도 많아서 통상 절차에 따라 나름대로 신속하게 심리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검사 측도 거기에 맞춰달라"고 당부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9월 5일 오후 2시 30분으로 지정했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로 같은 해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6개월 만인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했다.
유족들은 2020년 5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10·26 사건과 김 전 부장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4월부터 세 차례 심문을 열고 재심 여부를 심리한 재판부는 지난 2월 19일 김 전 부장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1980년 김 전 부장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진 지 45년 만이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을 수사했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의 폭행·가혹행위를 문제 삼았다.재판부는 "기록에 의하면 수사관들이 김 전 부장을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전기고문 등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이는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피고인에 대해 폭행·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폭행·가혹행위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검찰은 즉시 항고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5월 원심 결정에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이 없다고 판단해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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