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화성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A씨가 담임교사 B씨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일 화성시의 한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A씨는 교사 B씨와 함께 있던 교직원들에게 고성으로 항의했다. 당시 몸이 아파 조퇴한 자녀를 데리러 온 A씨는 B씨가 자녀 휴대전화가 켜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홀로 학교를 나서도록 했다며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불안 증세를 호소하며 병가를 냈다가 지난 8일 업무에 복귀했는데 복귀 당일 학급 내부 소통망에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올렸다. 이에 A씨가 반발하며 학교에 재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B씨에게 “나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어떻게 괴롭히면 이 사람을 말려 죽이는지 안다”고 했다. A씨는 화성시 소속 공무원으로 파악됐다.
도교육청은 B씨의 심리 회복에 집중하되 B씨와 협의해 추후 형사 고발도 검토하고 있다. 화성시는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공무원 품위유지의무 위반 사실이 인정될 경우 징계수위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이초 사건 2주기에도 “교권침해 여전”
2년 전 서이초 교사 순직사건 이후 정치권은 △교육기본법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 ‘교권5법’을 개정하며 교권 보호에 나섰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7일부터 4일간 전국 유·초·중·고 교사 등 4104명을 대상으로 교권 실태 교원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9.3%는 교권5법이 교권보호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는 응답은 20.7%에 불과했다.

교권5법 개정 이후 교육활동 보호 변화에 관한 교원 인식 관련 설문조사. (사진=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절반가량의 교사가 교권침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않는 이유는 아동학대 신고나 민원을 우려해서다.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를 하지 않고 참는 이유’(복수응답)를 물었더니 70%가 아동학대 신고와 민원 발생을 우려해서라고 답했다. 지역교권보호위의 처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응답도 51.4%에 달했다. 50.2%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안이 발생하는데 매번 신고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학교 차원 민원 대응 체계 만들어야”
교사들은 교권침해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교사들의 56%(복수응답)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기 위해 모호하고 포괄적인 정서적 학대행위의 개념을 명확히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금지하는데, 이 기준이 모호해 아동학대 신고 남발의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또 54.8%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남발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교권침해 행위로 인정하도록 교원지위법을 고쳐야 한다는 응답도 45.5%에 달했다.
보호자 민원에 대응할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응답 교사 중 90.9%는 학부모 민원·상담을 위한 공식 창구를 학교 대표전화나 온라인 민원 대응 시스템으로 일원화하고 교사 개인 연락처는 비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강주호 교총 회장은 “정부와 국회는 교권 관련 법령의 조속한 개정과 현장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장 교사들의 민원 응대 책임과 부담을 학교 차원에서 완화하고 덜어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