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군대 문화 보는 듯…명칭부터 바꿔야”[교육in]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19일, 오전 07:15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과거 1980년대의 군대 문화를 보는 것 같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18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고교학점제 논란을 이렇게 비유했다. 준비가 미흡한 상황인데 올해 전면 시행이 확정됐으니 학교 현장에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밀어붙였다는 점을 촌평한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교육부는 전날 “고교학점제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문위원회가 제시하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중 학점제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는 적성·진로에 따라 선택과목을 이수한 뒤 192학점이 쌓이면 졸업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신장하고 적극적인 진로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현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중 8~9명은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달 24일 공개한 고교교사 1033명 대상 설문 결과에 따르면 54.9%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여러 여건이 불비하지만 교사들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폐지를 검토해야 할 정도로 유지가 어려운 상태’란 응답이 31.9%로 뒤를 이었다.

교육부가 전면 시행 4개월 만에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박남기 교수는 “7년 동안 준비했는데 현장에서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 있다”며 “시간이 더 부여되더라도 현재의 미흡한 여건을 보완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은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이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 2018학년도 3월부터 전국 105곳의 고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이후 7년간 준비했어도 현장의 혼란이 크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시범운영을 확대하면서도 제대로 보완하지 못한 것”이라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생각으로 제도 도입 이후의 효과를 과대평가한 교육 이상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고교학점제 중 문제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이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다. 이는 학생들의 ‘과목 미이수’를 막기 위한 것으로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40% 이상의 학업성취율을 달성토록 독려하는 제도다.

교육부가 2021년 2월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에선 성취도 40% 미만의 경우 낙제에 해당하는 ‘미이수’를 받는 것으로 설계됐다. 이수하지 못한 과목이 쌓이면 유급이나 졸업 유예를 받는 게 학점제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선 학점을 낮게 받으면 다음 학기 재수강을 통해 이를 높일 수 있지만, 교육부는 이러한 재수강(재이수)제도 도입을 장기 과제로 미뤘다.

무리하게 유급이나 졸업 유예를 막으려다 보니 교사들의 불만만 쌓이고 있다. 교총 설문조사에선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의 부작용(복수응답)에 대해 묻자 84.8%가 ‘미이수 문제 해결을 위한 형식적 조치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보충 지도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거의 없고 참여를 독려해도 동의받기 어려운 상황’이란 불만도 78.7%에 달했다. 교육 당국은 최소 성취 수준 보장을 위해 학생들의 보충지도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박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고교학점제가 아니라 선택과목확대제로 명칭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고교 체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선택과목만 확대하는 방식으로 고교학점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사실 미이수나 유급·재이수 등이 없는 지금의 고교학점제도 원래 학점제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다 과목 담당’에 대한 문제점도 거론된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으로 선택과목은 늘었지만 이를 가르칠 교사·강사는 부족한 상황이라 교사 중 대다수는 2~3개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박 교수는 “교사들이 다 과목을 담당하게 되면 수업 준비 시간 부족으로 인해 정규수업은 물론 선택과목 수업의 질 역시 저하될 수 있다”며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하려면 고교도 대학처럼 강사를 대거 확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 지금의 혼란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예산당국 등과의 협의를 통해 선택과목을 가르칠 강사를 대거 확보해야 그나마 학점제 인프라를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개선안 도출을 위해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자문위에는 교사 10명, 교수 2명, 학생 2명, 학부모 2명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박 교수는 “자문위 의견을 토대로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 학생부 기재 부담 완화, 출결 처리, 강사 지원 등의 과제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당장 실행할 것과 내년부터 적용할 것 등을 분류해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자문위원회에는 정부의 인력·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의 담당 과장도 참여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시간 주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