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찾는 수업, 우리 학교밖에 없어요”…’학자시’ 학교 가보니[르포]

사회

이데일리,

2025년 7월 20일, 오후 09:38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칠판 가운데 놓인 대형 모니터 화면 위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연상시키는 포스터가 띄워졌다. 위에서 아래로 빨갛게 그려진 원, 삼각형, 사각형 오른쪽에는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에너지 효율보고 가전제품 구매’ ‘대중교통 이용하기’라는 문구가 쓰였다. 포스터는 ‘지금 이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자율시간으로 개설한 ‘기후변화와 우리’ 수업 중 학생들이 만든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포스터를 만든 중학교 1학년 윤다윤 학생은 “우리 모둠은 오징어게임을 배경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활동에 함께 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10일 찾은 서울 송파구 A중학교에서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선 접하기 어려운 기후변화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4~5명씩 한 모둠으로 묶인 학생들은 옆자리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태블릿을 이용해 기후변화에 관한 포스터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학생들은 탄소중립 실천 서약을 직접 작성해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자율시간으로 개설한 ‘기후변화와 우리’ 수업 중 학생들이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학교자율시간이 만든 기후변화·자아탐색 수업

이 수업은 A중학교가 올해 1학기부터 올해부터 개설한 ‘기후변화와 우리’ 과목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막기 위한 실천방안을 배우는 수업이다. A중학교는 올해부터 학교자율시간을 도입했기에 이러한 과목을 운영하는 게 가능했다.

학교자율시간은 학교에서 지역과 학교 여건, 학생 필요에 따라 국가 교육과정 외에 새로운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는 시간이다. 일종의 학생 맞춤형 수업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소통해 새로 만들 과목을 정하고 교사들이 개발한 뒤 교육감 승인을 얻으면 된다. 다른 학교에서 개발한 과목을 도입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학교자율시간은 기존 관련 교과 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확보해 운영한다. 중학교의 경우 6학기 중 1학기 33시간을 채우면 된다. 운영 학년과 학기는 학교 자율이다.

‘기후변화와 우리’ 수업의 바로 옆 반에서는 학생들이 모둠별로 모여 글을 쓰고 있었다. 이 반은 ‘나를 알고 함께 하는 성장’ 과목을 진행 중이었다. 이 역시 학교자율시간으로 도입됐으며 학생들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찍은 사진을 공유하고 이에 관한 에세이를 작성했다. 앞에 나와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사진을 소개한 B학생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라며 “함께 아픔과 기쁨을 나누고 성장할 수 있는 내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했다. 이어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멀리서 항상 응원해주시는 이모와 이모부 모두에게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수업은 ‘왜 가치관을 탐색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답을 작성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수업에 참여한 C학생은 “내 가치관을 알게 되면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기준이 생긴다”고 발표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자율시간으로 개설한 ‘나를 알고 함께 하는 성장’ 수업 중 학생이 에세이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다음엔 AI·경제 수업도 듣고 싶어요”

A중학교의 원유미 교사는 “’기후변화와 우리’ 과목은 기후변화 현상과 그에 따른 영향이 큰 만큼 학생들이 꼭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를 알고 함께 하는 성장’ 과목의 경우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는 심한 반면 자기 이해는 부족해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학교자율시간 과목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서라희 학생은 “국어나 수학, 영어는 모든 학교에서 공통으로 배우지만 학교자율시간 과목은 우리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다”며 “사회에 나가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평소 듣던 과목과는 달라 특별한 경험이 되고 주변 친구들도 만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반 이동규 학생은 “이번 학기는 자신을 이해하고 기후변화를 배우는 시간이었으니, 다음에는 타인을 이해하는 수업과 인공지능(AI), 경제 같은 사회 분야 과목도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자율시간으로 개설한 ‘나를 알고 함께 하는 성장’ 수업 중 학생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전공 넘는 수업 개발…“학생 맞춤 교육에 보람”

교사들은 자기 전공이 아닌 과목을 직접 개발하고 가르치는 데에 부담도 꽤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가르치지 못한 과목을 수업할 수 있어 보람이 더 크다는 반응이다.

원유미 교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을 교육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다”며 “특히 기후변화 수업은 예전에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단발성으로 진행해왔지만 학교자율시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업을 하니 더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새로운 과목 개발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진행하는 연수를 신청한 교사도 있다. A중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담당하는 김은지 교사는 “현재 시행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맞춤형 교육과 교사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 전반적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연수 참석을 신청했다”며 “새로운 음악 수업을 개발해 학생들이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채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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