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저출생…을사늑약보다 엄중"

사회

이데일리,

2025년 9월 15일, 오후 06:11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저출생이 임진왜란, 을사늑약보다 더 심각하다. 빼앗긴 나라는 되찾을 수 있어도 소멸한 나라는 되찾을 수 없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고위공무원 대상 강의에서 저출생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해법은 이전 학자들과 조금 달랐다.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보다는 사회 구조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사진=복지부 제공)
김태유 교수는 “저출생은 인류사적 메가트렌드”라며 “80억명에 이르는 세계 인구를 계속 먹여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출생으로 인구가 한없이 감소하는 게 아닌 일정수준에 도달하면 다시 출산율이 반등할 거로 봤다. 인구가 가파르게 줄어서 아예 사라질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다르다고 봤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5명(2024년)이다. 김 교수는 원인을 △인구과잉 △과당경쟁 △저성장을 원인으로 꼽았다. 1㎢당 인구밀도는 한국 517명, 일본 340명, 영국 259명, 프랑스 119명, 스웨덴 25명 등이다. 일자리 수도권 집중도는 한국 49.7%, 일본 31%, 프랑스 23%, 독일 4%다. 게다가 우리나라 경쟁성장률은 지난 30년간 정부마다 평균 1%씩 대세하락해왔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수도권에서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프랑스 청년의 8~10배나 된다”며 “이게 지옥이 아니면 뭔가? 청소년이 헬 조선을 이야기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 결과 삼포(결혼·연애·출산 포기 )세대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성세대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그런데 현 세대는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경제성장률 기대를 채워줄 수 있느냐는 그래서 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잘못된 가정과 진단, 처방 등 3가지를 꼽았다. 한국의 저출생 상황은 선진국과 다른데도 비슷하게 가정한데다 저출생이 문제가 아닌 부양비가 문제인데도 진단이 잘 못 됐다고 짚었다. 또한 세금으로 직접 지원하는 처방 또한 잘 못 됐다고 봤다.

김 교수는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은 부양비를 높이는 거나 마찬가지라 계속 실패할 것”이라며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부양비를 개선하는 것이다. 고령 인력을 활용하고 청년들을 신산업으로 유입해 부양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당 부양하는 유소년(14세 이하)과 고령인구(65세 이상)를 합한 백분율이다. 현재와 미래의 청·장년 세대가 짊어질 부양의무를 보여주는 중요한 인구 지표다. 현재 총부양비는 42.5명으로 2042년 76.7명, 2046년 85.7명으로 부담이 빠르게 커진다. 청년 1명이 노인과 어린이 1명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3명이 일해서 1명을 부양하도록 해야한다”며 “4차산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2명 몫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1명이 3명이 일한 만큼 생산 효율이 증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부양비도 ‘이모작 사회 한국노인부양비’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청·중년을 25~54세라고 한다면 장년을 55~74세, 부양할 노인을 75세부터로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부양 대상이었던 장년에게 20년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인생 이모작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첫 번째 시기인 일모작은 25~54세로 제조업, 첨단 기술이 상용화된 산업사회에 맞게 생업에 종사하게 하고 이모작 시기인 55~77세에는 사회적 경험과 판단이 중요한 일반서비스, 관리, 행정, 사무 등의 노동으로 전환해 본인의 성취와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부양받는 장년이 일하는 장년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연령별 능력 차이를 통한 세대 간 분업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이건 AX시대를 선도하는 보건복지부의 역할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구하는 부처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년연장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이건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며 “기껏 2~3년 정년연장은 100세 시대의 노후대비론 역부족이다. 기업은 고령화로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다. 국가적으로도 청년실업이 증가한다. 세대 간 심각한 갈등만 만들 것”이라고 짚었다.

아울러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범국가적 협의체를 만들고 국가경제 이모작 추진단을 만들어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같은 느슨한 부처는 있으나 없으나”라며 “지금은 정말로 절박한 상황이다. 지금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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