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사건' 재심 故강을성 '무죄' 선고…재판부 공개 사과(종합)

사회

뉴스1,

2026년 1월 19일, 오후 12:08

19일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에 처한 故 강을성 씨의 자녀 5남매와 변호인이 아버지의 무죄 선고를 환영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6.01.19/© 뉴스1 권진영 기자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고문 끝에 사형 집행된 고(故) 강을성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유족에게 사과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강민호)는 19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강 씨의 재심 선고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 요지를 공시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기록에 남긴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수사관들에게 불법 체포·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거나 이를 기초로 획득한 이차적 증거 역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한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과거 검찰 측이 제시한 공소사실 및 주장에 대해서도 정황증거·기초 사실에 관한 증거에 불과해 직접적인 증거는 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형 집행에 따른 불가역적인 피해와 유족의 고통에 대해서 사과했다.

강 판사는 "개인적인 소회에 불과하다"고 전제한 후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며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일에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념의 잣대가 진실의 눈을 가리거나 공포가 지배하던 시절에도 사법부만큼은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며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나 위법한 수사 등을 무시하면서 피고인이 자유를 돌이킬 수 없는 형을 선고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강 판사는 유족을 향해 "긴 세월 동안 오해 속에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오신 그 고통에 대해 위로를 드린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오류를 범한 사법기관의 일원으로서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죄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사건에서 국가 권력의 편이나 시대의 편견에 휩쓸려 억울함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연신 두 손을 모았다. 맏딸 강진옥 씨는 재판부의 사과에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답했다.

구형에 앞서 유족 측은 지난 7월 말 서울동부지검 임은정 검사장에게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후 검찰 측은 지난 결심공판에서 "억울함이 없도록 피고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 마땅히 지켜져야 할 절차적 진실이 원심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이 끝난 후 맏딸 강진옥 씨(60)는 "서른아홉에 아무것도 모르고 다섯 명의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던 어머니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며 '피 맺힌 절규의 시간'에 대한 심정을 토로했다.

강 씨는 "아버지가 사형이라고 그 단두대에 섰을 때 그분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온몸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며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신 역사적인 아버지의 삶이 재조명됐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아버지, 억울함 다 푸시고 더 좋은 세상에서 큰일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막내아들 강원택 씨(56)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시작한 재심이 오늘에 이르렀다"며 "아버지가 사회와 종교에 헌신하신 부분들을 조각조각 찾아내 여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검찰이 아직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한 유족들을 위해 직권으로 재심을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족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정의에 부합하냐"고 반문하며 "민간에서는 수소문해서 만나지 않는 이상 (재심 신청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민주수호동지회를 결성해 활동했던 재일교포 진두현 씨와 한국에서 활동했던 박석주 씨, 김태열 씨, 그리고 군인이었던 강을성 씨 등을 보안사령부로 연행해 고문한 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고문을 통해 받은 진술을 토대로 이들이 통일혁명당 재건을 기도한 간첩단이라고 발표했다. 형사소송법상 고문·폭행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얻어낸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지만 기소된 이들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강 씨는 1976년, 김 씨는 1982년 처형됐다.

강 씨에 앞서 이뤄진 재심에서 박 씨 등 4명은 무죄가 확정됐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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