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겠습니다”…‘24시간’ 환자 살리기 위한 최전방 섰다[신의열전]

사회

이데일리,

2026년 1월 28일, 오전 06:19

[고양=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새벽 2시 구해원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파주시에서 뇌출혈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그날만 세 번째 응급호출이었다. 외래와 수술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의 “받겠습니다”는 한마디로 또 하루의 밤이 시작됐다.

구해원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사진=일산백병원)
경기도 일산·파주·김포 일대에서 뇌출혈·뇌경색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심야 시간대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구 교수는 이 지역에서 사실상 마지막 응급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응급 뇌혈관 환자는 시간이 생명이지만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매는 순간 예후가 나빠진다”며 “결국 연락이 오는 곳으로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의 진료시간은 사실상 ‘24시간 당직’에 가깝다. 당직업무가 아닌 날에도 언제든 호출을 받을 준비를 한다. 구 교수는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어도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의료진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환자를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 내 의료진과 구급요원들도 구 교수를 믿고 환자를 맡긴다. 타 병원에서 ‘대응이 어렵다’며 협조를 요청할 때 그의 대답은 늘 “제가 받겠습니다”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피해주면 안돼”

그는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 치료 철학은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환자를 살리는 데 특화돼 있다. 수술보다는 시술에 집중해 온 선택의 결과다.

구 교수는 뇌혈관 치료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수술 중심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다. 의사의 능력은 ‘얼마나 많이 열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환자에게 해를 덜 주었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도 있다. 김포에서 이송된 70대 남성 A씨는 뇌동맥류 파열 상황이었다. 대량 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 보호자들은 ‘머리를 연다’는 말에 크게 불안해했다. 그는 머리를 여는 대신 혈관 내 시술을 선택했다. 구 교수는 “시간이 관건이었고 환자 상태상 수술은 부담이 컸다”며 “시술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좋았다. A씨는 큰 합병증 없이 회복했고 며칠 뒤 스스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수술을 많이 해야 실력 있는 의사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며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의사의 숙련도가 아니라 어떤 치료가 가장 안전한가”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뇌출혈이나 뇌동맥류 치료에서 개두 수술이 표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수술은 회복 부담과 합병증 위험이 크다. 구 교수는 “기술 발전으로 혈관 내 접근 시술은 출혈과 조직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고, 회복도 빠르다”고 설명했다.

구해원 교수가 환자에게 뇌혈관 색전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일산백병원)
실제로 그는 지난해에만 뇌동맥류 코일 색전술을 240건을 시행했다. 사타구니 부위 혈관을 통해 미세도관을 삽입한 뒤 정상 혈관은 보존하면서 동맥류만 막히도록 백금 코일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개두수술만이 정답 아냐…더 많은 환자 치료하고파”

이 정도 시술 건수를 기록한 의사는 드물다. 그만큼 더 많은 뇌혈관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열지 않아도 되는 머리를 여는 것은 환자에게 불필요한 위험을 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료 방식뿐 아니라 의사 수련과 평가 기준 역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신경외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는 일정 횟수 이상의 개두수술 요건이 여전히 존재한다. 전공의 수련을 이유로 열지 않아도 될 환자의 머리를 여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구 교수는 “시술이 환자에게 더 적합한 경우에도 교육과 평가 구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하게 되는 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맞은 치료 방법을 선택하면 같은 시간과 같은 인력이 주어진 상황에서도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그래야 젊은 의사들도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구 교수는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 아직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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