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상생' 아닌 '충돌'이 먼저 왔다[김덕호의 갈등사회]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02일, 오전 07:05

[김덕호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오는 3월 10일 시행을 앞둔 노조법 개정은 아직 법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산업 현장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현대제철에 내린 도급업체 직원 1213명 직접 고용 시정 명령은 ‘원청 책임 강화’라는 정책 방향이 현실로 투영된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비롯한 하청 노조들은 원청을 상대로 파상적인 교섭 요구에 나섰고 현대차 노조는 생산공정에 투입될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단 한 대도 들일 수 없다”고 공언했다. 법 시행 전부터 노·사·정 삼각 갈등이 전면적인 충돌 국면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현장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번 개정의 핵심이 노동쟁의 범위의 유례없는 확대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노사관계의 기술적 조정을 넘어 국가경쟁력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개정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의 결정’까지 쟁의 대상으로 포섭했다. 그 결과 임금과 복지를 넘어 자동화 설비 도입, 공정 전환, 조직 개편, 사업 축소·이전 같은 경영권의 본질적 영역마저 교섭과 쟁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현대차 노조가 로봇 투입을 노사 합의 사항으로 못 박은 것도 이러한 법적 변화를 선제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의 단면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글로벌 경쟁 환경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 전쟁과 공급망 재편 속에서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기술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업이 기술 전환과 생산 혁신을 신속히 추진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도태는 불 보듯 뻔하다. 경영상 판단이 반복적으로 교섭에 묶이고 파업의 대상이 되는 구조에서는 투자와 혁신이 지연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기업들의 ‘탈(脫)한국’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기술은 결코 분쟁의 종결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술 변화의 속도는 노동의 대응보다 훨씬 빠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사무·전문직 일자리를 잠식하는 사이 피지컬 AI와 로봇은 생산직의 근간을 파고들고 있다. 이 거대한 전환기에 노사관계가 대립과 충돌의 구습에 머문다면 기업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사람보다 기술’을 선택하는 속도를 높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은 원청의 정규직이 아니다. 노동시장 진입로가 막힌 청년들과 원청 교섭의 전면에 서지 못한 채 비용과 불확실성을 떠안는 하청 근로자들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된다.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제도가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역설이 발생하는 셈이다.

선진국들은 단체교섭의 확대와 경영권 보호 사이에 엄격한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은 판례를 통해 이익 창출을 위한 사업 폐쇄나 기술 투자 같은 ‘경영적 결정’을 교섭 의무에서 제외한다. 독일 또한 협의는 장려하되 경영 판단을 이유로 한 파업은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한다. 교섭과 협의의 통로는 넓히되 파업과 같은 실력행사의 범위는 경영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기준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현대제철 사례에서 보듯 정부는 이미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법·시행령·지침이 구체적인 기준과 한계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현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지침에서 ‘경영상 결정 그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닐지라도 실행과정에서의 배치전환이나 업무 재편이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은 치명적이다. ‘로봇 도입’이라는 결정은 자유롭되 그 로봇을 공장에 배치하는 것은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는 경영권의 본질을 형해화하고 현장의 유연성을 마비시키는 ‘소리 없는 족쇄’가 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다. 정부와 정치권은 교섭과 쟁의의 범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권리 확대의 방향만큼이나 그로 인한 산업적 충격을 관리할 책임 또한 정부에 있다. 시행일은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상생의 마중물이 될지 공멸의 도화선이 될지는 남은 시간 대화의 밀도와 정부의 정책적 정교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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