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생’ 몰래”…‘민낯’ 드러낸 밀가루·설탕·전기 담합에 檢 ‘철퇴’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02일, 오후 06:54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물가 담합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문한 가운데 검찰이 밀가루·설탕 가격 담합과 한국전력공사 전력기자재 입찰 담합 사건을 집중 수사해 대표이사급을 포함한 52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이 불공정 담합으로 취득한 이익 규모는 10조 원에 육박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2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대한제분(001130)·사조동아원(008040)·삼양사(145990)·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법인 6곳과 소속 대표·임직원 14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5년 9개월간 밀가루 가격 변동 폭과 시기를 합의하는 방식으로 5조 9913억원 규모의 담합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담합 기간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2023년 1월 기준)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담합 이전 대비 22.7%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담합 기업들의 내부 녹취록과 통화 녹음, 문자메시지, 자필 메모 등 핵심 증거를 직접 공개했다. 증거 곳곳에는 경쟁 당국의 적발을 비웃고 법질서를 무시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국내 밀가루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는 주요 3사가 모여 가격 인상 폭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일괄적으로 다 1500원은 못 올린다, 경쟁당국에 적발될 수 있다”며 “우리는 2000원 올리겠다고 통보하고 마지막에 500원 내리고 다른 곳은 1800원 올렸다가 300원 조정하는 식”이라고 논의하는 등 담합 구조가 들키지 않도록 했다. 내부 회의 때는 ‘공선생(공정거래위원회)’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대화도 오갔다. 또 다른 통화 녹음에서는 “강력·박력은 3000원, 중력은 4000원 올리자”며 최종 인상 폭을 결정한 뒤 수요처에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순서까지 ‘사다리 타기’로 정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나 부장검사는 “먼저 인상을 통보하면 밉보이니까 돌아가면서 순서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檢 “CJ제일제당·삼양사, 과소인하로 영업이익 극대화”

앞서 검찰이 지난해 11월 처분한 설탕 가격 담합 사건에 대한 브리핑도 이날 함께 이뤄졌다. CJ제일제당(097950)과 삼양사 등 국내 설탕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하는 제당사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약 4년 2개월간 3조 2715억원 규모의 설탕 가격을 담합했다는 것이 해당 사건의 주요 골자다. 검찰은 담합을 주도한 국내 1·2위 제당업체 대표급 임원 2명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임직원 9명과 법인 2곳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설탕가격 담합은 인상뿐 아니라 인하에서도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나 부장검사는 “가격을 낮춘 건 양심적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과소 인하를 통해 영업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간에서 인하를 방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인하폭을 최소한해 이득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처분한 한국전력공사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한 브리핑도 이어서 진행했다. 효성중공업(298040)·현대일렉트릭·LS(006260)일렉트릭·일진전기 등 관련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는 4개사를 포함한 10개 법인이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7년 6개월간 145건, 총 6776억 원 규모의 입찰을 담합한 사건이다. 담합을 주도한 4개사 임직원 4명이 구속 기소됐고, 관련 업체 임직원 7명과 법인 8곳이 불구속 기소됐다.

나 부장검사는 담합 근절을 위한 법정형 상향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 범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으로, 미국(징역 10년 이하)·영국(징역 5년 이하)·캐나다(징역 14년 이하) 등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는 “캐나다는 벌금이 무제한이고 호주는 징역 10년, 일본도 5년 이하인데 우리나라는 루마니아보다 못한 경쟁법 대응 체계를 갖고 있다”며 “담합을 반복하는 이유는 어차피 개인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해봤자 집행유예, 회사는 벌금형을 받는다. 담합 범행에 가담한 행위자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향후 고기·주류 등 민생경제와 직결되는 다른 생활필수품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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