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이 안 알려줘도 면책 안돼…공인중개사 설명의무, 어디까지인가[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07일, 오전 12:30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임대인의 전세 사기 및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가구주택 임대차 계약 시 공인중개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특히 임대인이 선순위 보증금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손해를 두고 중개사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어왔다.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과 달리 여러 가구가 거주하지만 소유권은 하나로 묶여 있어, 경매가 진행될 경우 선순위 임차인들의 보증금 합계액에 따라 후순위 임차인이 보증금을 전혀 회수하지 못하는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의 설명 의무를 엄격하게 해석하며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사진=나노바나나)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원고는 공인중개사 A의 중개로 수원시의 한 다가구주택 호실을 보증금 110,000,000원에 임차했다. 당시 건물에는 채권최고액 715,000,000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고, 다른 7개 호실에도 선순위 임차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중개사 A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임대인의 자료 제출 불응으로 선순위 다수 있음을 구두로 설명함”이라고만 기재했고, 원고는 이를 확인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이후 건물이 경매에 넘겨져 약 3,605,353,555원에 일괄 매각되었고, 선순위 채권자들에게 먼저 배당이 이루어지면서 원고는 보증금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사건에 대해 제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제1심은 중개사가 임대인의 비협조를 이유로 막연하게 설명한 것은 충분치 않다며 중개사의 과실을 인정하고 손해액의 60%인 66,000,000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인 원심은 중개사가 임대인의 자료 제출 거부 사실을 고지했고 임차인도 이를 인지한 상태에서 본인의 위험 부담 하에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중개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했다. 중개사가 임대인의 동의 없이 선순위 보증금 내역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의 시각은 항소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하며 공인중개사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강조했다. 대법원은 공인중개사가 단순히 임대인이 제공한 정보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설령 임대인이 관련 자료를 주지 않더라도, 중개사는 해당 건물의 규모와 전체 세대수, 주변 임대차보증금 시세 등을 확인하여 선순위 보증금이 어느 정도 규모일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개업공인중개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와 신의성실로써 해당 다가구주택에 선순위 임대차보증금 채권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지 조사·확인하여 임차의뢰인에게 성실하게 설명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에 임대인이 자료를 안 준다거나 선순위가 많다는 식으로만 기재하는 것은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특히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은 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므로, 중개사는 확인 가능한 범위를 최대한 조사해 구체적인 위험성을 경고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번 판결은 공인중개사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의 범위를 한 단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중개사는 임대인의 자료 제출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식견을 바탕으로 물건의 위험성을 분석하고 설명해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되었다. 이는 부동산 중개업을 건전하게 육성하여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공인중개사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해석이기도 하다. 중개사 입장에서는 책임이 무거워졌으나, 이는 곧 중개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법원은 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임차인 스스로가 다가구주택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증금 회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점을 들어 책임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임차인은 중개사의 설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직접 확정일자 부여기관에 정보 제공을 요청하거나 임대인에게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요구하는 등 자기 보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임대인의 침묵이 공인중개사에게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부동산 거래의 전문가로서 중개사는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도 드러내어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가구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중개 관행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보증금은 서민들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지키는 것은 중개사와 임차인, 그리고 법과 제도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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