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폼생폼사’ 안전대책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09일, 오전 09:17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노동자’를 재해에서 보호하는 안전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경영책임자’를 처벌에서 보호하는 안전이 지배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산업현장에선 실질 안전과 거리가 먼 형식 안전으로 안전역량이 올라가기는커녕 되레 떨어지는 살풍경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안전비용의 큰 증가를 고려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업에선 중대재해가 날 때마다 허겁지겁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 “대대적으로 투자하겠다”라고 발표하지만 진정성과 전문성이 없다 보니 땜질식 대책에 그치기 일쑤다. 현장 안전을 망가뜨리는 일도 다반사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안전보다는 공포에 떠밀린 보여주기식 안전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성을 묻지 않고 전관을 채용하거나 권력기관에 줄 댈 수 있는 외부자(기관)를 찾는 데 혈안인 기업이 많아진 이유다.

정부의 부실한 안전평가를 받는 공기업의 모습은 사기업보다 겉치레가 심하다. 1년 내내 평가 준비로 ‘페이퍼 안전’에 집중하면서 실효적 안전을 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안전 업무가 사명감과 보람을 기대하기 어려운 ‘영혼 없는’ 업무가 되고 말았다. 공기업에서 안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으면서도 재해가 줄지 않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재벌 그룹에서 만든 안전 관련 재단과 연구소도 외양과 달리 전문성은 보잘 게 없다. 안전에 기여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전문성 없는 노동부 전관을 수장으로 앉혀 놓거나 계열사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시성 사업을 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설립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일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대기업과 공기업의 민낯이다. 안전 일류기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행태로는 우리나라에서 안전 일류기업이 탄생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듯싶다. 초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우수사례가 나와야 이것이 민들레 홀씨처럼 다른 기업으로 확산할 수 있을 텐데 눈에 띄는 우수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안전은 왜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고)가 됐을까. 기업만의 문제일까. ‘고비용·저효과’ 노동안전이 고착화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법규제가 가장 많은 곳이 노동안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법규제가 노동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초대기업과 공기업마저 안전수준이 낮다는 건 법규제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업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정책에 큰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먼저, 지나친 처벌 중심 정책이 기업의 방어적 대응을 부르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답변하지 못하는 규정(중량물 기준, 원청사와 하청사의 역할·의무 범위), 어떤 기업도 준수할 수 없는 규정(기계 정비 시 에러 검출 등을 위해선 운전해야 하는데도 무조건 정지할 의무, 형광등 교체 등 사실상 모든 전기작업에 대한 작업계획서 작성 의무)으로 처벌을 일삼는 환경에선 진정 어린 안전은 기대난망이다. 막무가내식 처벌은 정의에도 반한다.

재해가 발생하면 원인의 정확한 파악보다는 위반과 재해 간의 인과관계를 무한정 확대 해석해 어떻게든 처벌하려는 것도 안전 발전에 큰 걸림돌이다. 이런 풍토에선 재해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기 어렵다. ‘이혼의 원인이 결혼’, ‘살인자 출산이 살인의 원인’이라는 식의 인과관계에 대한 자의적 판단은 방어용 서류의 무분별한 증가와 책임감의 실종을 초래하고 죄책감마저 끌어내지 못한다.

노동안전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노동안전의 정상화를 위해선 정부부터 진정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조악한 정책이 안전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현장에 큰 혼란과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정부는 안전원리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안전 우수기업 등장의 걸림돌이 아닌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헛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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