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초 보도한 ‘일본의 치매머니가 전 세계에 보내는 경고’라는 기사에서 일본 치매환자가 보유한 자산, 이른바 ‘치매머니’가 315조엔(약 2929조원)에 이른다고 했다. 특히 치매머니는 경제의 구조적 취약 요인으로 부상한다면서 일본의 상황이 비단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양지윤 사회부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치매 노인의 자산을 위탁 관리하는 ‘공공신탁’ 사업을 시범 도입하고 2028년 본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제도 도입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라도 사회적 수용성과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려워서다.
치매머니 문제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경우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전용 창구를 개설하고, 노인의 인지 기능이 남아 있을 때 자산을 자녀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가족 지원 계좌’와 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여러 금융기관은 고객의 인지 저하 징후가 포착되면 신규 거래를 제한하거나 계좌를 동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사기 피해와 향후 법적 책임을 우려한 방어적 선택이었다. 금융기관의 이같은 대응은 보호보다는 차단에 가까웠고, 그 부담은 고령 투자자와 가족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실제로 고령 부모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던 자녀 가운데 약 11%가 계좌 동결을 경험했고, 치매 진단을 받은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해 기업 인수합병(M&A) 계약이 무산된 사례까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치매머니 보호를 위해서는 제도 마련 뿐만 아니라 인지 저하에 따른 재정 위험을 사전에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 교육’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대의 보건경제학자 징 리는 “65세 무렵부터 기억력과 판단력이 약해지고 이는 재정적 의사결정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노화로 인한 재정적 손실은 결국 고령자의 공공 의료와 복지에 대한 의존을 높이고 그 부담이 가계에서 정부로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치매머니 공공신탁은 민간신탁이 닿지 못했던 서민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액 자산가 중심의 민간신탁과 달리 비용 부담을 줄여 제도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탁’이라는 결정은 사전 인식과 가족 간 대화, 신뢰를 전제로 한다. 당사자가 자신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어떤 제도도 공허한 껍데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제도 설계만큼 각성이 중요한 이유다.
치매머니는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방치한 자산은 곧 치매환자와 가족의 부담으로, 금융시장의 장애로, 세대 간 불균형으로 각각 번진다. 치매는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치매로 돈을 잃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제도 마련과 교육을 동시에 시작하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