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주위에서 극우단체 관계자가 '반일은 차별이자 혐오다'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2026.1.7 © 뉴스1 박정호 기자
"윤하야, 내일 여기로 출근해." 수습기자 시절, 선배의 지시를 받고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으로 처음 출근했던 게 2021년 11월이었다.
코로나19 집회 인원이 확대 허용되면서 보수성향 단체 자유연대와 진보 성향 단체 반일행동이 한창 '집회 자리 선점'으로 갈등을 빚던 시기였다.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보수단체의 '위안부 모욕 시위'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극우 단체의 위안부 모욕 시위는 2026년 2월까지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의기억연대의 수요시위는 여전히 조용할 새가 없었다. 수요시위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 "위안부는 가짜"라는 외침과 함께 소녀상 철거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번주 수요일엔 위안부 모욕 시위가 열리지 않았다. 무려 4년 3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6일 X(구 트위터)에서 위안부 모욕 시위에 대해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후 한 달 만에,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가 거리 시위를 그만두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 대통령이 X에서 공개적으로 위안부 모욕 시위를 비판한 후 자신을 향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압박감을 느꼈단 취지로 설명했다.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자신의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저를 천박하고 독기 품은 언설로 공격하자, (중략) 경찰은 경찰대로 저의 활동을 탄압한다"고 적었다.
실제로 경찰은 이 대통령이 X 게시물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 서초경찰서를 집중 수사 관서로 지정하고 관련 사건들을 이첩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김 대표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과 피의자 조사도 진행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선 한 달 만에 김 대표가 백기를 들었다는 것을 보고, 다행이란 생각보다 '왜 이제서야'라는 씁쓸함이 먼저 밀려왔다.
이 대통령의 X 게시물이 위안부 모욕 시위를 멈췄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틀림없지만, 바꿔 말하면 어떤가. 경찰은 4년 3개월 동안 할 수 있었던 수사를 미루다가 대통령의 X 게시물 때문에 뒤늦게 수사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만난 정의연 관계자들은 여전히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고 의문을 표했다. 이들은 2022년 정의연이 위안부 모욕 시위와 관련해 접수한 고발의 수사 상황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물론 사자 명예훼손, 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위안부 모욕 시위 주최자들을 수사하거나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게 현행법상으로 쉽지 않다는 게 경찰의 딜레마긴 하다. 이들이 소녀상에 팻말을 씌우는 게 개인이 아닌 동상에 대한 행위이고, 혐오 발언 또한 특정 개인보단 '위안부'란 집단을 향해 있어 특정성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찰에 대한 비판이 불가피한 건, 정권의 뜻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수사 속도 때문이다. 대통령이 SNS에 몇 줄 쓴다고 집중 관서를 지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면, 그전에도 '엄정 수사'에 나설 수 있는 사안이었단 뜻이다. 경찰은 대통령이 뭐라 하든, 뭐라 말하지 않든 상관없이 사건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한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줘야 한다.
또한 이번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찰의 수사는 단지 '중한 처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경찰이 어떤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강도로 수사하는지가 '이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사회의 부정의를 멈추게도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로 98세,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은 모두 80세가 넘었다. 사회의 부정의가 멈추기까지 4년 3개월은 누군가에게 너무 긴 시간이다. 경찰 수사는 위안부 모욕 시위 이외에도 수많은 사회 부정의를 멈출 수 있다.그래서 바란다. 경찰 수사 동력이 대통령의 X를 초월하길.
sinjenny97@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