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효과의 복수[최종수의 기후이야기]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14일, 오전 05:00

[최종수 환경 칼럼니스트]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작은 별 B612를 떠나 여러 행성을 여행한다. 그 여정에서 지리학자는 지구를 소개하며 “지구가 괜찮아. 그 별은 평판이 좋아”라고 말한다.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간 유리 가가린도 지구 궤도 비행 후 눈앞에 펼쳐진 푸른 행성의 모습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1972년 아폴로 17호 승무원이 촬영한 지구 사진이 훗날 ‘블루 마블’(Blue Marble), 즉 ‘푸른 구슬’로 불린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를 이처럼 눈부시고 무엇보다 생명력 넘치는 별로 만든 결정적 조건은 무엇일까.

1972년 미국 달 탐사 우주선 아폴로 17호가 촬영한 지구.(사진=NASA)
우리는 그 조건으로 흔히 물을 떠올린다. 물론 물은 생명에 필수다. 그러나 물이 생명력을 발휘하려면 물이 순환하는 데 바탕이 되는 물리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온 것이 이산화탄소·메탄·수증기 등 온실가스가 만들어낸 ‘온실효과’다. 오늘날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바로 그 현상이 한편으로는 지구를 ‘살 만한 행성’으로 만든 조건이기도 하다.

온실효과라는 이름은 겨울에도 내부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유리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유래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햇빛이 온실 안을 데우면 그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워 내부 온도가 올라간다. 지구에는 유리나 비닐 같은 구조물이 없지만 대기 중 기체가 복사 에너지의 흐름을 조절함으로써 비슷한 결과를 만든다. 눈에 보이는 ‘천장’이 아니라 대기의 성질이 지구의 온도를 좌우하는 셈이다.

태양에서 도달한 에너지는 지구를 데우고 적외선 형태의 열로 다시 방출된다. 지구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려면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메탄, 수증기 같은 온실가스는 적외선 영역의 에너지를 잘 흡수한다. 이들은 지표에서 방출된 열의 일부를 붙잡아 뒀다가 다시 사방으로 재방출하면서 지구의 대기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가 마치 유리나 비닐처럼 열을 붙잡아 두는 셈이다.

온실효과는 지구의 온도를 생명이 살기 좋은 범위로 유지해 주는 보온 장치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약 15도로 유지되는 것도 온실효과 덕분이다. 온실효과가 없었다면 지구의 평균 기온은 영하 18도 안팎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보다 30도 이상 낮은 세상은 단순히 더 추운 수준을 넘어 지금의 생태계가 존재하기 어려운 전혀 다른 행성이 됐을 것이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물의 형태다. 지표면은 대부분 얼음으로 덮였을 것이고 물이 액체나 기체로 존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결과 구름이 형성되고 비가 내리는 물의 순환은 크게 약해졌을 것이다. 물의 순환이 멈추면 풍화와 침식 작용도 달라지고 토양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어려워진다. 결국 생태계가 뿌리내릴 토대가 약해진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강과 바다, 비와 눈, 계절의 변화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구는 오랜 시간 온실효과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인 온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크게 늘었다. 마치 열을 붙잡아 두는 온실의 유리나 비닐이 두꺼워진 셈이다. 지구의 복사 에너지 균형이 흔들리고 더 많은 열이 지구에 머물면서 지구온난화가 진행됐다. 폭염과 폭우 같은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커지며 기후가 빠르게 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온실효과 자체를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온실효과의 ‘존재’가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인간 활동으로 그 강도가 과도해졌다는 데 있다. 목표는 온실효과가 본래 수행하던 조절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며 온실의 유리나 비닐을 걷어내는 일이 아니라 대기 중 온실가스의 ‘두께’를 적정한 수준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지구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온실효과가 더 이상 재앙이 되지 않도록 탄소 중립을 향한 과감한 전환과 적응 전략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어린 왕자가 소개받았던 지구를 ‘괜찮고 평판 좋은 별’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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