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 동대문구 용두공원. 적막감 사이 긴장감이 감돌았다. 롱패딩을 입고 방한 운동화를 신은 10~20대 청년 20여명은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일제히 흩어졌다. 스마트폰의 조명을 켠 채 내달리던 ‘경찰’은 풀숲과 가로수 뒤로 숨은 ‘도둑’을 검거하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경도’(경찰과 도둑) 놀이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모양새다. 동네 생활 애플리케이션(앱) 당근에서 모임 약속을 잡고 운동장이나 공터에 모여 추억이 담긴 술래잡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감튀모임과 같은 다양한 파생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동대문구 용두공원에서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 참가자들이 흩어지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본격적으로 경도를 하기 전 몸풀기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했다. 16~28세 중·고·대학생 뿐만 아니라 퇴근 후 합류한 직장인, 취업준비생, 운동선수 등 다양한 참가자들은 나이나 배경과 상관 없이 술래의 구호에 맞춰 움직였다. 초면의 어색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뿐, 곧이어 ‘마피아 게임’도 이어졌다. 둥글게 모여 앉아 마피아와 경찰·의사·시민으로 역할을 나누고 시민이 모두 죽기 전 술래인 마피아가 누군지 찾는 게임이다. 누가 마피아인지 가리기 위해 토론하며 참가자들은 더욱 가까워지는 모습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7시께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 참가자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15분간 숨막히는 추격전 끝에 도둑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경찰이 공원의 구조물 위에 올라가 있던 도둑 3~4명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숨을 가빠르게 내쉬었고 쓰러져 눕기도 했다. 입 밖으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뛰어다녀 더운 탓에 겉옷을 벗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들은 경도 놀이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운동선수인 홍성민(21)씨는 “어제도 나왔는데 마피아 게임을 하며 느낀 쾌감이 너무 좋고 재밌었다. 평소에는 잘 못 느꼈던 것 같다”며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뛰어노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선 그렇게 놀 수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송파구에서 온 이승준(21)씨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막상 게임에 참가해보니 너무 재밌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을 몇 년 만에 처음 느껴봤다”며 “어릴 적 추억처럼 순수하게 노는 게 좋아서 또 왔다”고 했다.
감튀 모임 참가자가 주문한 감자튀김 포장용기를 모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 앱 '당근'에 전국 각 지역에서 감튀 모임 모집 글이 올라와 있다. (사진=SNS 갈무리, 당근 앱 화면 갈무리)
당근 앱에 감튀 모임을 검색하면 서울 등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 동해·경남 김해·대구·울산·부산·제주·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100여 개가 나온다. 이 만남에서는 맥도날드와 KFC 등 가게에서 모여 감자튀김만을 잔뜩 주문한 뒤 브랜드마다 제각각인 감자튀김 스타일을 비교하고 어떤 감자튀김이 가장 맛있는지 논한다고 한다.
감튀 모임에 참여해 봤다는 정서현(16)씨는 “(모임에서) 사람들이 얘기를 너무 잘 들어주고 20살인 언니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며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친해지는 게 재밌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감튀 모임을 연 취업준비생 강 모(25)씨는 “감튀를 좋아하지만 그걸 굳이 다른 사람과 나눠본 적이 없는데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먹고 대화할 수 있어서 열었다”며 “일상에 활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청년들은 경도 놀이와 감튀 모임 등 반짝 모임이 유행하는 배경으로 저비용과 저부담을 꼽았다. 고물가에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셔도 최소 3만~10만원이 드는데 감튀나 경도는 아무런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감튀 모임에 참여경험이 있는 직장인 곽수연(27)씨는 “(모임이) 부담이 없다. 연애 같은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튀도 많이 먹어봐야 2000~3000원이다”며 “마음 편하게 나가서 즐기고 헤어지면 된다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경도 모임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박시현(25)씨는 “스마트폰 없이 사람들과 놀이를 즐겼던 경험이 고등학생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며 “학교도 졸업하다보니 동아리도 안 하고 평소 아르바이트나 취업준비만 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시간을 내서 나오길 잘했다”고 했다. 10번 이상 모임에 나왔다는 김태형(17)군도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잘 안 뛰는데 와보니까 뛸 수 있어서 좋다”며 “모르는 사람도 많이 사귀고 좋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모임 공식은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쾌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과거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던 경험이 있는 세대인데 온라인으로 주로 이뤄지는 최근 모임에 대한 피로감이 있을 것”이라며 “게임같은 온라인 활동보다도 신체적으로 움직이며 느끼는 도파민이 가장 크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