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TEO 테오' 채널의 오리지널 웹 예능 '살롱드립2'에 출연한 아이돌 장원영(아이브)이 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추천하고 있다. /(출처 : TEO)
간단한 검색부터 사주·연애 고민까지 인공지능(AI)에 질문하는 시대에 철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출판 시장부터 일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까지 조용하지만 확실한 반응을 얻고 있다.
예스24의 지난해 11월 4주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는 니체의 초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위버멘쉬(Übermensch)'가 올랐다.
연령대별로는 특히 20대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교보문고가 제공한 '연령별 전년 동월 대비 판매 신장률' 자료에 따르면 전 연령대 중 20대만이 2025년 8월부터 2026년 1월까지 판매량 증가세를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책보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익숙해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세대이지만 즉각적인 정보 소비에 지친 만큼 느린 사유를 제공하는 철학에서 오히려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철학 도서 5권은 △위버멘쉬(프리드리히 니체, 떠오름) △쇼펜하우어 인생수업(쇼펜하우어, 하이스트)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정약용, 모티브) △초역 부처의 말 필사집(코이케 류노스케, 포레스트북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 유노북스)로 집계됐다.
특히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대세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추천 도서로 유명하다. 이 같은 '철학 붐'은 명지대·원광대·경남대 등 철학과가 대학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흐름 속에 반가운 역풍이다.
'철학 인플루언서' 뜨자 인문학 공론장 열린 SNS
인스타그램 철학맨 계정(@chulhak_man)에 올라온 릴스 갈무리.
이런 역풍의 한가운데에는 철학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이는 '철학맨'이다.
철학맨의 릴스는 학문과 놀이를 넘나든다. 알베르 카뮈의 명저 이방인을 소개하는 영상에서는 유행 중인 '윤정아' 밈을 개사해 "카뮈야 카뮈야~ 왜요 쌤 왜요 쌤~ 햇볕 뜨겁다고 사람 쏴 죽이지 말랬지? 죄송해요 쌤~"이라며 춤을 춘다.
이는 인기 밈을 통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속 핵심 장면을 장난스럽게 패러디한 것이다. 소설은 부조리와 실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핵심 장면을 유머로 소화해 심리적 입문 장벽을 낮춘 것이다.
아이돌 같은 칼각 안무는 볼 수 없지만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11월 25일 첫 게시물을 올린 뒤로 철학맨 계정은 단 69일 만에 팔로워 1만 명을 달성했다. 릴스 댓글란에는 "너무 재밌는데 계속해 주시면 안 되냐"거나 쇼펜하우어·비트겐슈타인·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의 후속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철학맨을 팔로우하는 직장인 강 모 씨(30대·여)는 "연구자의 광기가 보여서 재밌다. 철학이 어렵지만 궁금한 학문인데 설명하는 게 재밌어서 구독했다"고 말했다.
철학맨 계정주이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선중 씨(35)는 12일 뉴스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인기의 배경으로 '철학에 대한 갈증'을 꼽았다. 그는 "삶과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며 깊은 탐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며 "철학을 주제로 자신을 표현할 공간이 충분치 않았던 점도 빠른 성장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제가 올린 영상을 보고 철학 고전들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동한다"며 "인문학적 코드를 이용해 서로 (댓글을 통해) 농담을 주고받는 현상도 너무 좋다. 인문학 소재로 웃고 떠들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고 뿌듯해했다.
김 씨는 책보다 인공지능(AI)에 질문을 던지는 요즘 시대에도 철학의 가치는 유효하다고 믿는다. 그는 "철학은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사고방식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학문"이라며 "여전히 철학을 통해 문제를 설정하고, 문제에 따른 탐구 방법을 탐색하고, 그 방법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고 했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철학의 길을 걷고 있는 김 씨는 "항상 학문적인 철학과 일상적인 철학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1은 철학맨 김 씨의 추천을 받아 '설에 읽는 철학 도서'를 선정했다. △우리 시대의 갈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다면 '계몽주의 2.0'(조지프 히스)을 △단단한 내면을 위한 불멸의 고전을 원한다면 '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을 △철학을 처음 접한다면 '철학사 수업'(김주연)을 권한다.
realkw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