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등록금 맞먹는 노트북 가격…대학가 덮친 '칩플레이션'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20일, 오전 05:56

[이데일리 정윤지 박원주 기자] 역대 최대폭 수준의 칩플레이션(chip+inflation(인플레이션))‘으로 노트북과 개인용 컴퓨터(PC) 부품 값도 덩덜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신학기를 앞뒀지만 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을 넘어서는 수준의 노트북 가격에 학생들은 한숨을 쉬며 지갑을 닫고 있다. 노트북 구매를 미루거나 기존에 갖고 있던 노트북에 부품만 추가하는 모양새다. 불경기에 신학기 특수마저 사라지자 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삼성·LG 등 주요 제품 최대 70만원 인상…“등록금 수준”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주요 노트북 제조사들의 2026년 신제품 출고가가 1년 전 대비 일제히 큰 폭으로 인상됐다. 국내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의 신형 노트북 가격도 전작대비 50만~70만원 올랐다.

삼성전자의 최신형 모델인 ’갤럭시 북6 프로(16인치, 32GB RAM/1TB SSD)‘의 출고가는 260만~351만원으로 책정됐다. 전작(갤럭시 북5 프로)의 동일 사양 모델이 최고 280만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가격 상단 기준 약 25%(70만원) 급등한 수준이다. LG전자의 ’그램 프로AI 2026‘ 모델 출고가도 314만원대로 전작 대비 약 19%(50만원) 가격이 올랐다.

천정부지로 오른 노트북 값에 입학을 앞둔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대형 전자·가전 판매 매장에서 만난 이준혁(54) 씨는 “딸이 대학에 입학해 노트북을 사주려고 왔는데 이 정도로 비쌀 줄은 몰랐다”며 수차례 노트북을 둘러보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대학 2학년으로 복학하는 진성준(22) 씨도 “공대라서 쓸 만한 사양은 전부 250만원, 300만원이 넘는다”며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이라서 당장 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조립PC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태블릿PC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찾은 용산 선인상가 1~4층에는 둘러보는 손님이 거의 없어 썰렁했다. 조립PC 매장을 운영하는 주 모씨는 “조립PC도 가장 저가로 했을 때 5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만원까지 올랐다”며 “비싼 컴퓨터는 올라도 티가 안 나지만 저렴한 사양의 부품을 사용하는 PC는 가격차이가 크다보니 소비자들이 구매를 안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신정우(28) 씨는 “일단 제품과 가격을 보러 왔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고민을 더 해야할 것 같다”며 “자기소개서를 쓸 용도로 사려는데 당분간은 PC방에서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간 비싼 노트북으로 여겨졌던 애플의 맥북이 ’가성비‘ 선택이 되고 있다. 개발자인 30대 임모씨는 “아직은 맥북에 램을 추가하는 가격이 현재 램값보다 훨씬 싸다”고 전했다. 렌더링 등 고사양 프로그램을 상시 구동하느라 메모리 용량이 중요한 건축업계에서는 ’지금이 그나마 쌀 때‘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서둘러 컴퓨터를 맞추려는 수요가 몰리지만 자고 나면 값이 올라 장비 마련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선인상가에 오가는 손님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사진=정윤지 기자)
◇AI 열풍이 부른 나비효과…HBM에 밀린 부품들 ’공급 절벽‘

노트북과 PC 가격의 급등은 세계적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의 나비효과다. AI 구동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등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이 생산 역량을 HBM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흔히 노트북이나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이 축소되며 시중에서는 ’공급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의 직격탄이 됐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 범용 D램(DDR4 8GB 1Gx8)은 1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이 11.50달러로 전년 동월(1.35달러)에 비해 8.5배 폭등했다. 메모리카드·USB 범용 낸드플래시(128Gb 16Gx8 MLC)도 전년 동월 2.18달러에서 9.46달러로 4배 이상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완제품 비용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 15~20% 수준에서 현재 40%까지 높아지며 가격 인상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전월대비 2배 이상 높아진 것을 뛰어넘는 역대급 가격 인상이다.

부품가 급등은 중고 시장 모습도 바뀌고 있다. 소위 ’램테크(RAM+재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구형 메모리 수요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 1000원 안팎의 헐값에 거래되던 4GB 구형 D램이 20배나 오른 최근 2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28년째 선인상가에서 부품 매장을 운영하는 소지영(57) 씨는 “그 정도면 싸게 잘 샀다는 반응이다”며 “램을 구하러 오는 손님들은 가격을 물어 알려주면 (너무 비싸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반도체 가격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노트북과 PC가격도 지속 상승할 전망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생산 기업들은 (D램) 가격이 오르니 생산량을 빨리 늘리길 원치 않을 것”이라며 “기존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범용 메모리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지 않아 상반기까지 높은 가격대가 이어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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