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김용현 계엄 선포 이틀 전 결심"…재판부가 본 내란 전말

사회

뉴스1,

2026년 2월 20일, 오후 05:45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선고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19 © 뉴스1

'12·3 비상계엄 사태는 내란 행위'라는 법적 판단이 나오면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징역 30년) 등과 공모해 사전에 내란을 모의하고 실행한 일련의 과정들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건을 심리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가 비상계엄 사전 모의부터 해제 공표까지 3일간 윤 전 대통령 등 내란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법적 판단을 내놨는지 살펴봤다.

12·3 비상계엄 D-2, "윤석열·김용현 계엄 결심"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를 점하고 있어 정부의 주요 관료들을 탄핵하고 예산을 삭감하자 경호처장이었던 김 전 장관과 이런 사정들을 공유하며 자주 한탄했다. 당시 여인형 방첩사령관(방첩사),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특전사),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수방사) 등과 모인 자리에서도 같은 생각을 표현했다.

국회에서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를 진행하자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1일 김 전 장관과 함께 '12.3. 22:00 계엄 선포'를 결의하고 군대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와 경기 과천시 소재 선거관리위원회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두 사람은 먼저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 활동 및 일체 정치활동 등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선포하고 이후 국회에 군을 보내 국회의사당 등을 봉쇄하기로 계획했다. 또 국회의장, 여야 당대표 등 주요 인사들을 포고령 위반으로 체포·구금하고자 했다. 부정선거 수사를 위해 군을 선관위로 보내 서버 등을 확보·분석하고 전산 직원들을 심문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배경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가 무리한 탄핵소추 시도, 일방적인 예산안 삭감 시도 등 대통령과 정부 활동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에 점차 지나치게 집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2024년 12월 1월 무렵에는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라고 결심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이 사건 실체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 1·2인자, 계엄 3시간 전부터 준비…모두 유죄
윤 전 대통령은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하더라도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엄 선포 3시간여 전, 2024년 12월 3일 오후 7시 20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에서는 조지호 전 경찰청장(징역 12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징역 10년)과 긴급 회동이 이뤄졌다. 김 전 장관도 배석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조 전 경찰청장과 김 전 서울청장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군을 국회에 투입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경찰의 질서유지'를 지시했다.

오후 10시 16분쯤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열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11명에게 일방적으로 계엄 선포 일정을 통보하고 비상계엄 후 필요한 조치 등을 지시했다. 그리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오후 10시 23분부터 TV 생중계를 통해 4분간 대국민담화를 진행하다가 돌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경찰의 국회 통제가 시작됐다. 오후 10시 46분쯤 서울청이 국회 전면을 차단하면서 1차 출입 통제가 이뤄졌다. 김 전 서울청장은 안가 회동 직후 국회 출입문 현황 등을 미리 파악해 경찰기동대 등을 준비시켜 놓았다. 계엄이 선포된 직후 조 경찰청장과 논의해 국회 각 문에 기동대를 배치하고 차 벽을 설치했다.

서울청은 오후 11시 7분~15분 사이 국회의원과 국회 출입증 소지자의 출입을 허용하다가 오후 11시 23분쯤 포고령이 공포되자 이를 근거로 오후 11시 35분부터 다시 국회 외부에서 내부로의 출입을 전면 차단했다(2차 출입통제).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징역 3년)은 김 전 서울청장 지시에 따라 각 문에 배치돼 있던 기동대와 함께 2차 출입통제를 진행했다. 1차 출입 통제 과정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국회경비대는 오후 11시 57분쯤 국회 1 내지 7문을 완전 폐문했다.

재판부는 조 전 경찰청장에 대해 "법률을 집행하는 경찰 총책임자임에도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면밀히 검토하기는커녕 이를 근거로 국회 출입을 차단했다"며 "국회 출입 차단 과정에서 민간인을 보호했다는 사정을 발견하기 어렵고 오히려 군의 국회 출입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김 전 서울청장은 "윤 전 대통령과 조 전 경찰청장 지시에 따라 경찰을 국회에 출동시켜 국회 출입 막는 일을 직접 주도했다"고 꼬집었다. 목 전 경비대장은 "국회사무처 직원들로부터 명확하게 항의를 받았음에도 출입 통제에 계속 가담하는 등 비난의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왼쪽)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계엄 관련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출석해 있다. 오른쪽은 조지호 경찰청장. 2024.12.5 © 뉴스1 김민지 기자

尹, 계엄군 국회 진입 몰랐나…법원 "충분히 예상 가능"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31분쯤 수방사 병력을 시작으로 특전사에서 출동한 707특임단, 제1공수특전여단 등 계엄군이 국회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707특임단 일부 인원은 2024년 12월 4일 0시 32분쯤 국회의사당 본관 유리창을 부수고 정문 점거를 시도했다. 곽 전 사령관은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임박하자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지시를 받고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에게 '의원들을 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전했다.

비슷한 시간대 0시 24분쯤 특전사 제1공수특전여단이 국회에 진입했다. 이들은 버스 등 차량으로 국회 인근에 도착했다. 일부는 월담 등 방법으로 국회 경내 침입해 국회의사당 본관 정문 쪽으로 갔다. 곽 전 사령관 지시로 본회의장 안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모두 밖으로 나오게 하려 한 것이다. 곽 전 사령관은 이상현 전 제1공수특전여단장(준장)을 통해 '문을 부숴서라도 의원들을 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강하게 재촉했다.

수방사 병력에게는 일단 국회 경내로 들어가 국회의사당 본관 건물 주변을 경계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나 이행하지 못했다. 다수의 인파가 국회 각 문에 물려드는 바람에 일부만 국회 경내로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진압 시도는 국회 관계자 등의 강한 저항과 반발로 실패로 돌아갔다.

재판부는 이 같은 계엄군 행위가 모두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이 직접 곽·이 전 사령관에게 '국회의원들을 회의장에서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았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은) 이미 12월 3일 이전에 김 전 장관과 함께 군 투입 계획을 세우면서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부 장관에게 세부 계획을 일임하는 등 이와 같은 내용의 임무를 부여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상가능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다. 2024.12.4 © 뉴스1 구윤성 기자

김용현 '체포조' 지시…법원 "尹, 미필적으로 인식"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 전 사령관에게 '합동수사단을 구성하라'고 하고 14명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줬다.

2024년 12월 4일 오전 0시 25분쯤 여 전 사령관은 방첩사 요원 5명씩 1조를 만들고 각 조에서 체포 대상자를 1명씩 정해 국회로 출동시켰다. 그는 방첩사 요원들에게 '체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체포되면) 인계받아 수방사 B1벙커로 이송하라'는 임무를 전달했다.

여 전 사령관은 오전 0시 41분쯤 먼저 출동한 방첩사 요원들에게는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우선 체포해 구금시키라'는 임무를 다시 부여했다.

그러나 국회는 오전 1시 3분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군인들은 오전 1시 11분부터 국회 경내에서 철수하기 시작해 오전 3시쯤 기동대까지 완전히 물러났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오전 4시 20분 비상계엄 해제를 공표했다. 계엄 선포 5시간 53분 만이다.

재판부는 방첩사 체포조가 부여받은 임무 내용이 체포 의미로 파악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후 여 전 사령관에게 14명의 명단을 불러주며 '잡으라'는 취지, 즉 체포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조 전 경찰청장 역시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14명 이름을 듣고 메모까지 했다고 진술했다"며 "실제 방첩사 체포조는 5명씩 출동하면서 조별로 체포 대상자 이름을 하나씩 부여받기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은 체포조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포고령 자체에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명확하게 두고 있어 체포를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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