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수거책된 '26년 경력' 경찰…법원도 "날로 기상천외"

사회

뉴스1,

2026년 2월 21일, 오전 07:00

© 뉴스1 이은주 디자이너

"이거 보이스피싱 아닌가요?"

법무사 채권회수 보조 업무 중이던 A 씨는 지난 2021년 5월 '보이스피싱'이란 직감을 느끼고 자신이 전직 경찰임을 밝히며 이같이 물었다.

A 씨는 경찰로 근무하던 2013년쯤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해 경로당 등에서 홍보 활동을 한 적이 있는 26년 경력의 전직 경찰관이다.

그러나 A 씨에게 현금 1900만 원을 건넨 B 씨는 되레 단호했다. B 씨는 금융감독원과 통화하던 휴대전화를 A 씨에게 건네며 '보이스피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B 씨는 114에 전화해 금융감독원 대표 번호로 전화 통화를 한 상태였다. 확신에 찬 B 씨의 태도에 A 씨는 수긍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에 "보이스피싱 같으면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떠났다.

A 씨에게 일감을 주던 '법무사'가 사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다.

A 씨는 지난 2021년 5월 말쯤 자칭 '법무사' C 씨로부터 '현금을 수거하고 지정 통장으로 무통장 입금해 주면 건당 10만~30만 원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

면접 등 구체적인 절차를 거치진 않았지만 '심부름'에 가까운 일이어서 간단한 취업 절차와 신분증을 촬영해 보내고 채용됐다.

그러나 A 씨가 '채권회수 업무'라고 생각했던 심부름은 사실 보이스피싱범의 현금 수거책 일이었다. A 씨는 이렇게 '수거책'으로 활동하며 총 19명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 사용, 1875만 원을 무통장 입금한 혐의를 받았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채권 관련 업무니까 민사소송을 하면 그런 경우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며 "민사소송을 하면서 강제로 돈을 받는 일이 있으면 법무사를 통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또 "당시 보이스피싱 수법은 피해자가 은행에 가서 직접 계좌 이체하는 방법이었다"며 "이번 같은 보이스피싱 방법은 저도 처음 알게 된 방법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원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제주지법 형사1단독 강민수 판사는 지난 2023년 2월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을 인식하였음에도 이를 용인하면서 범행에 나아갔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사기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피고인의 범행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보이스피싱 조직이 편취금을 용이하게 취득하게끔 자금세탁을 한 것으로 피고인이 범죄조직의 진의를 알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그 행위만으로도 죄책이 무거운 행위"라며 주민등록법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했다.

검사의 항소에도 무죄 판결은 유지됐다. 제주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오창훈)는 "피고인이 전직 경찰관이라고 하더라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을 일일이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변명을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kit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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