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당신은 AI 챗봇보다 따뜻한가

사회

이데일리,

2026년 2월 27일, 오전 05:00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교수인 지인이 던진 한마디가 며칠째 마음에 남았다. “요즘 애들은 과제를 인공지능(AI)으로 써서 보내더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웃으며 답했다. “그 학생은 이런 말투를 쓰는 친구가 아니거든.”

그 순간 우리 대화는 자연스럽게 AI로 흘러갔다. 지금은 AI가 만든 문장의 특유한 어조를 구별할 수 있다. 지나치게 정제된 문장, 어색하게 완벽한 문법,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범할 법한 사소한 실수조차 없는 매끄러움. 하지만 이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까. AI가 인간의 말투는 물론 우리의 태도와 습관, 심지어 실수하는 패턴까지 학습한다면 그때도 우리는 구별할 수 있을까.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의 수많은 영상을 통해 학습한다.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서 웃고 어떤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지 분석한다. 인간의 감성 트리거를 찾아내고 어떤 따뜻한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울컥하는지도 데이터로 축적한다. 머지않아 AI는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흉내를 넘어서 더 탁월할지도 모른다. 감정적으로 지쳐 있거나 상처받아 날이 선 인간보다 항상 일정한 온도로 따뜻함을 제공하는 AI 챗봇이 더 효과적으로 위로를 건넬 수도 있다. 판단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고 언제든 경청하는 존재. 실제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AI와의 대화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로봇과 휴머노이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AI가 우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질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당신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낸 AI 챗봇보다 더 따뜻한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과연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보였는가.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었는가. 아니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이유로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역설적이게도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인간다움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보다 인간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따뜻함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난다. 서툴게라도 상대의 손을 잡아주려는 마음, 정답을 알려주지 못해도 함께 울어주는 공감,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전해지는 위로. 이런 것들은 데이터로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무게, 겪어온 상처와 치유의 경험,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인간만의 온기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더욱 단단하게 가꾸는 일이다. AI가 효율을 담당한다면 인간은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 AI가 정보를 처리한다면 인간은 지혜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AI가 아무리 따뜻함을 흉내 낸다고 해도 우리는 진짜 따뜻한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의 과제가 AI가 쓴 것인지 알아챈 교수의 통찰은 단순히 기술의 한계를 간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그 학생은 이런 말투를 쓰는 친구가 아니거든.” 이 한마디 속에는 학생 개개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이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AI보다 더 따뜻한 존재였는가.’

AI 챗봇보다 더 따뜻한 인간이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시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일지 모른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심각한 회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나간다면 우리는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우리를 위협하는 동시에 기회를 준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진짜 따뜻함, 알고리즘으로 계산할 수 없는 진심, 데이터로 예측할 수 없는 사랑. 이것들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우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누군가에게 따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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