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뉴스1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길어질 조짐이다. 중동 정세가 흔들릴수록 석유와 가스의 전략적 중요성은 다시 커진다. 국제 유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화석연료 공급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카타르 라스라판 액화천연가스(LNG) 단지 타격으로 카타르 LNG 수출 능력의 17%가 3~5년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은 불안을 더 키운다. 정부는 당장 수급 차질은 크지 않다고 밝혔지만, 카타르산 LNG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불확실성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이 장면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에너지 시설이 직접 타격 대상이 되는 순간, 전쟁은 곧장 세계 경제 문제로 번진다. 전 세계 석유 소비와 LNG 세계 거래량의 20%가 인질로 잡혔다. 특정 해협과 특정 산유국, 특정 LNG 단지에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조지 밀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톰 하디, 샬리즈 시어런(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다.
이 영화는 자원이 고갈된 세계에서 물과 연료를 쥔 소수가 질서를 독점하고, 나머지는 그 권력에 종속되는 사회를 보여준다. 10년 전, 이 영화가 개봉할 때의 홍보 문구는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였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지금 세계를 보면 그 문장은 점점 비유로만 읽히지 않는다. 중동에선 석유와 가스가 다시 전쟁의 중심에 섰고, 다른 한편에선 기후가 생존 조건 자체를 흔들고 있다.
한국도 그 흐름 바깥에 있지 않다. 올여름부터 한국에는 '폭염 중대경보'가 신설된다. 체감온도 38도 이상이거나 일 최고기온 39도 이상인 상황이 하루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발령되는 기준이다. 기존 폭염경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이다. 이미선 기상청장은 "서울의 경우 지난해 7~8월의 약 39%가 폭염경보 상태였다"는 점이 제도 도입 배경으로 제시됐다. 폭염경보가 너무 잦아져 경각심이 떨어졌고, 더 강한 위험 신호가 필요해졌다는 판단이다. 경보 위의 '초(超) 경보'가 옥상옥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더위가 더 이상 계절적 불편이 아니라 재난의 상수가 됐다는 의미가 담겼다.
다만 폭염경보가 너무 흔해져 중대경보를 신설했다면, 앞으로 기후가 더 나빠질 경우 또 다른 상위 경보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중대보다 더 중대한 경보'가 언젠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다. 물론 경보 체계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런 우려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과학과 행정이 이미 더 위험한 여름을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장면은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미국 서부에선 3월인데도 이례적 폭염 특보가 내려졌다. 미국 국립기상청(NWS)은 피닉스 일대에 '역사적인 3월 폭염'을 경고했고, 벌써 38도에 이르는 고온이 나타났다. 남부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은 평년보다 20~30도 높은 기온이 관측됐다. 봄 문턱에서 이미 한여름 같은 더위가 나타난 것이다. 계절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이 지점에서 전쟁과 폭염은 하나로 이어진다. 화석연료에 의존한 세계는 한편으로는 에너지 공급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을 키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온실가스를 축적해 기후를 더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한쪽에서는 석유와 가스가 권력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물과 온도가 생존 조건이 된다. 무덥고 마른 환경에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 이른바 '극한 상황'(Mad Max)에 가까워지는 흐름이다.
실제 시장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 중동발 LNG 공급 차질 우려 속에 유럽 가스 가격이 한때 35% 급등했고,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석탄 회귀 압력까지 거론됐다. 에너지 안보 불안이 커질수록 재생에너지 확대가 아니라 더 즉각 쓸 수 있는 화석연료로 되돌아가려는 유혹도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탈탄소가 늦어질수록 폭염은 심해지고, 폭염이 심해질수록 다시 냉방과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악순환도 이어진다.
결국 문제는 미국과 이란, 혹은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군사 충돌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가 아직도 석유와 가스에 얼마나 깊이 묶여 있는가다. 특정 해협과 특정 산유국, 특정 LNG 단지에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를 유지하는 한, 전쟁의 충격도 폭염의 충격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갈등은 서둘러 끝나야 한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대세'가 되는 전환도 더 빨라져야 한다. 석유와 가스를 둘러싼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폭염 중대경보와 '여름이 된 봄'이 일상이 될수록, 매드맥스는 영화가 아니라 경고문에 가까워진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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