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울산 울주군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4남매와 30대 아빠의 발인이 22일 엄수된 가운데, 장례식장 빈소에 마련된 영정.(사진=연합뉴스)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급여 신청주의 개선 및 극복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 신청주의는 수급자에게 학습·준수·심리적 비용 등 행정 부담을 지워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행정 부담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학습 비용’은 제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자격 여부와 신청 방법을 확인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다. ‘준수 비용’은 서류 작성과 증빙 제출, 관공서 방문 등 절차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전적·시간적 부담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비용’은 신청 과정에서 겪는 수치심과 낙인, 스트레스 등으로 개인의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과정에서 부담이 가중된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는 신청주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독일은 산재보험 등 일부 급여에서 행정이 직접 개입하는 직권주의를 병행하고 있다. 스웨덴은 신청주의를 유지하면서도 행정 데이터를 연계해 신청 절차를 줄이고,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신청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다만 자동화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와 데이터 부적확성과 소유권 문제, 개인 사생활에 대한 개입 등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 문제 해결을 위해 행정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수급자의 신청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잠재적 수급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능동적 복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신청 부담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데이터의 집적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신청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며 “스웨덴의 자동화된 의사결정(ADM) 사례는 디지털 기술이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며 현장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재편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짚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 네 번째)이 22일 위기가구 사망 사건 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했다.(사진=복지부)
직권주와 신청주의의 요소를 유연하게 결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독일의 산재보험 사례처럼 일부 영역에서 직권주의를 도입, 국민의 수급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이다. 핵심은 신청 여부에 따라 권리가 좌우되는 구조를 완화하고, 누구나 필요한 시점에 복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정은경 장관 주재로 위기가구 사망 사건 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복지 전달체계 전반을 점검했다. 울산 울주·전북 임실과 군산 등에서 위기가구 사망 사건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복지부는 긴급 지원이 필요한 경우 공무원이 직접 신청을 진행하는 ‘직권 신청’ 활성화와 함께 신청주의 개선을 핵심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실명제 예외 적용 등 직권 신청을 위한 제도 정비와 함께 한부모 가족 지원 개선 등 관계부처 협업 과제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 장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위기에 놓인 국민을 선제적으로 찾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도록 직권 신청 활성화와 신청주의 개선 등 핵심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