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 뉴스1 김진환 기자
중동 지역 긴장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불안이 현실화하자, 정부가 공공기관 의무·민간 자율 차량 5부제를 포함한 전방위적 에너지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전력·연료 수급 안정과 에너지 효율화, 전기요금 인상 압박 완화를 위한 긴급 대응이다.
정부는 먼저 공공기관부터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고, 민간에는 자율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운행을 제한한다. 정책 효과와 참여율에 따라 추가적 강제 조치도 가능하다고 밝혔으며, 동시에 생활 속 절약 실천과 대중교통 이용 확대 등 다양한 수요 억제 방안도 병행해 에너지 소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5일부터 공공 '차량 5부제' 의무화…'위기' 시 민간 강제 확대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정부는 원유 안보 위기 2단계인 '주의' 경보 발령 후 공공부문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고, 민간은 자율 참여를 유도하는 수요 억제책을 가동했다.
차량 5부제는 자동차번호판 끝번호와 요일을 기준으로 운행을 제한하는 조치다. 월요일에는 번호판 끝자리 1·6, 화요일 2·7, 수요일 3·8, 목요일 4·9, 금요일 5·0에 해당하는 차량이 각각 운행을 멈춘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주의 단계는 위험이 커지는 단계이고, 경계 단계는 그것이 현실화하는 단계"라며 "현실화하면 훨씬 더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직은 '자율'이라는 완충 장치를 두되, 상황이 악화하면 곧바로 강제 조치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의 중심에는 전기요금이 자리하고 있다. 김 장관은 "전기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LNG 가격"이라며 "LNG 소비를 최소화하면 전기료 인상 압박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부는 이와 함께 승용차 5부제 자율 참여, 대중교통 이용, 실내 적정온도 유지, 전기차·휴대전화 낮 시간 충전, 샤워 시간 줄이기 등 생활 속 절약 실천도 병행해 에너지 수요를 전방위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료 인상 막자"…LNG 대신 원전·석탄 발전 풀가동
전기요금은 기본요금과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그리고 LNG·유연탄·유류 가격을 반영하는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연료비조정요금은 발전용 LNG 비용이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항목이다. 중동 전쟁 이후 동북아 현물 LNG 지표인 일본·한국 마커(JKM)는 2주 만에 50% 넘게 상승했고, 일부 시점에는 전쟁 발발 전 대비 100% 이상 급등하는 등 가격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일단 2분기 전기요금은 동결됐으나, 3분기 인상 압박은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원전 가동을 늘리고, 앞서 '탈석탄동맹'을 가입하며 종언을 선언했던 석탄 발전의 연장, 차량 5부제로 석유 수요를 줄이는 조합을 택한 것은 결국 LNG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에너지 믹스 조정과 수요 억제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조치는 '요금 인상 지연'에 초점을 둔 단기 대응 성격이 짙다. 발전 연료 구조를 조정하는 동시에 수송 수요까지 함께 억제해 요금 인상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루겠다는 계산이다.
고령층 무임승차 제한까지 검토…'정치적 부담' 안고 강공책
정치적 부담이 큰 카드들이 함께 거론된 점도 눈에 띈다. 출퇴근 시간대 고령층 지하철 무임승차 제한은 선거를 앞두고 시행하기 쉽지 않은 정책이지만, 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일반 국민이 5부제를 하면 불편이 생길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단계적 강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수요 억제 정책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중동상황 관련 대응현황 및 계획을 보고 받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2026.3.24 © 뉴스1 허경 기자
공공부문을 먼저 묶는 방식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 장관은 "그동안은 특별히 점검하거나 강제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비상시기"라며 공공기관부터 강제 적용하겠다고 했다. 위반 시 징계까지 가능하게 한 것은 단순 권고를 넘어 실제 수요를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만 국회·법원 등 헌법기관에는 "협조 요청을 통해 사실상 공공기관에 준해 운영하겠다"고 밝히며 제도 충돌은 피했다.
다만 정책의 실효성을 가늠할 핵심 지표인 실제 절감량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김 장관은 차량 5부제에 따른 에너지 총사용량 감소 규모에 대해 "아직 챙겨보지 못했다"며 별도 산출을 예고하는 데 그쳤다. 정부 내부적으로 하루 약 3000배럴 수준의 절감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참여율과 운행 패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정밀한 효과 분석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정부가 차량 5부제와 대중교통 규제까지 동시에 시행한 것은, 에너지 수급 불안이 실제 요금과 민생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ac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