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전 경감(사진=연합뉴스)
이 전 경감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로 악명을 떨쳤다. 전기고문, 물고문 등 온갖 고문을 통해 거짓 자백을 받아내 ‘고문 기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도 얻었다.
그는 김근태 전 의장이 고문당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 등 여러 공안 사건에 연루됐다. 또 이른바 ‘서울대 무림 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가 시작되자 10여 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자수했다. 고문과 불법 구금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7년간 복역한 뒤 2006년 만기 출소했다.
출소 이후 목사로 활동하며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지만,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그는 2012년 12월 14일 서울 성동구 한 식당에서 열린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며 “애국이 아니면 누가 목숨을 내놓고 일했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세월이 지나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며 “그 바람에 가족들도 거지가 되다시피 살았다”고 토로했다.
이 전 경감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서울에서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경감의 발인은 27일 이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