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해방운동사 그림으로 국보법 유죄…전승일 감독 재심 시작

사회

뉴스1,

2026년 3월 27일, 오전 11:31

애니메이션 감독 전승일 씨(가운데)와 변호인단이 27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고 있다. 2026.03.27 © 뉴스1 유수연 기자

민족해방운동사를 주제로 한 대형 그림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법 연행돼 유죄를 선고받았던 애니메이션 감독 전승일 씨(60)의 재심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서윤 판사는 27일 전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전 씨를 대리하는 이종훈 변호사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전 씨를 이 사건 그림 제작 활동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선정했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활동이 유죄 판결로 남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은 구 국가보안법이 금지하는 이적표현물이 아닌 점 △구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위헌 결정이 있었던 점 △1991년도에 개정된 국가보안법 7조 1항의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증명이 없는 점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점 등 4가지 무죄 사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35년 전 재판에서 증거로 쓰였던 전 씨의 진술조서 등은 불법 구금 관련 수사로 위법수집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민중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89년 당시 전 씨의 1심에서도 증인으로 나선 바 있다.

검찰 측은 "그 사이에 국가보안법이 개정돼서 이적표현물인지 여부를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하겠다"며 "불법 구금이 인정된다면 위법수집증거로 인정되는 부분이 있고, 위법성이 희석·단절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증거 의견을 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는 5월 8일 오전 11시 공판기일을 열고 검찰 측 의견을 들은 뒤 이 교수에 대한 증인신문이 필요한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 씨는 공판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제가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이라는 것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며 "국가의 잘못을 국가가 스스로 인정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무리하게 유죄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무죄를 구형해야 한다"며 "법원은 이를 수용하고 국가의 사과와 무죄 판결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전 씨의 재심 변호인단의 황호준 변호사는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1989년 안기부 수사관이 자행한 불법 수사의 실체를 사법부가 공식 인정했다"며 "한 예술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 사건을 사법부가 바로잡을 기회를 얻은 점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전 씨는 대학생이던 1989년 '전국대학미술운동연합'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해방운동사' 대형 걸개그림을 제작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수사기관은 전 씨의 그림이 북한에 동조하는 이적표현물이라고 봤다.

이후 전 씨는 1991년 4월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전 씨는 당시 수사 기관이 불법 체포, 구금을 자행하고 폭언과 폭행 등 가혹행위로 진술을 강요했다는 취지로 2024년 6월 재심 개시를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해 8월 "수사기관이 긴급 구속의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않았다"며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즉시항고 했으나 항고심은 이를 기각했다. 검찰의 재항고도 대법원에서 기각돼 전 씨의 재심 본안 소송이 열리게 됐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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