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사전심사 통과 '0건'…무더기 각하 이유 봤더니

사회

이데일리,

2026년 3월 30일, 오후 05:25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이른바 ‘재판소원’이 시행된지 3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250여건의 사건 중 아직까지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소원 청구 요건이 까다로워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 문턱을 넘기 어려워서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각하한 26건 사건을 모두 분석한 결과 가장 비율이 높은 각하 사유는 ‘기본권 침해가 명백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30일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사건검색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개정 헌법재판소법 시행 이후 이날까지 250여건의 재판소원이 청구됐다. 이 중 26건은 이미 사전심사에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각하됐다. 헌법재판소는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우선적으로 사건을 심사한 뒤, 적합한 요건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건에 한해서만 전원재판부로 회부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지정재판부에서 ‘각하’된다.

헌재가 지난 27일 공개한 각하 결정문 26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재판소원 청구이유 중에는 △재판청구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침해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재산권 침해 주장이 뒤를 이었고 대법원의 심리불속행을 이유로 재판소원을 청구한 건도 2건 있었다. 심리불속행이란 법원이 상고 사건을 접수했을 때 법률적으로 특별한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본안 심리 자체를 하지 않고 재판을 종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밖에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노동권, 공무담임권 침해 등을 이유로 든 사건도 있었다.

각하 이유로는 ‘기본권 침해가 명백하게 소명되지 않았다’가 16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확정 판결 이후 30일 이내에 청구하지 않았다’가 5건, ‘보충성 예외 원칙으로 볼 수 없다’가 2건(명백한 기본권 침해 소명 1건 중복), ‘청구권 남용’도 2건이 각하됐다. 항소심 진행 중인 사건과 구체적인 기본권 침해 이유가 담기지 않은 사건도 각하됐다.

헌재법 개정안에 재판소원 청구기간을 확정판결 이후 30일 이내로 설정한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청구도 있었다. 이에 대해 헌재는 당초 청구인의 청구 사유가 부적합해 이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며 각하했다. 형사사건에서 유죄를 받은 이들이나 민사소송법상 방어권 행사 기회가 박탈됐다며 기본권 침해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법원의 사실인정 또는 증거의 평가, 법률의 포섭·적용의 당부를 다투는 것이거나 재판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하다”며 각하했다.

이 외에도 청구인의 대출 원리금 상환 의무를 인정한 사건, 소멸시효를 이유로 유족급여 청구가 기각된 사건, 분묘훼손과 관련해 법원이 제사주재자를 지정한 사건,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건 등도 재판소원으로 올라왔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각하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무더기 각하’를 헌법재판소의 선언적 의미로 분석하고 있다. 법원의 확정 판결을 헌재가 뒤집는 일은 실질적으로 매우 드물 것이란 전망이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 청구 요건 중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것은, 누가봐도 모두가 인정하는 경우일 때”라며 해당조건으로 인해 재판소원이 4심제로 작동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른 변호사는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희망고문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제일 부담이 되는 사람은 돈 없고 힘 없는 일반 국민들”이라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재판이 늘어짐에 따라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버티기 어려운 개인들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내달 13일 개정 헌재법 시행 한 달을 맞아 한 달간 재판소원 접수 건수를 공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원재판부로 회부되는 첫 사건은 언론에 공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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