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노바나나)
1심과 2심은 수분양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형식적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위반사항이 계약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할 만큼 중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계약서에 나열된 다른 해제사유들이 모두 계약 목적 달성 불능을 전제하고 있으니, 시정명령 관련 조항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법원 생각은 달랐다. 판결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약정해제권의 발생요건은 계약에서 정한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약정해제는 법정해제와 달리 채무불이행의 중대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부수적 의무위반을 이유로도 해제할 수 있도록 약정했다면 그에 따른 해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다. 해제조항이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라고 일의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이상, 시정명령의 경중이나 계약 목적에 미치는 영향까지 따질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이 해제조항이 당사자가 임의로 넣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물분양법 시행령이 분양계약서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요구하는 사항을 반영한 것이므로 일반적인 채무불이행 해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처분문서의 문언이 명확할 때에는 문언대로 해석해야 하고, 달리 해석하면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하급심의 논리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광고에 기재사항 하나 빠뜨렸다고 수백억 원어치 분양계약이 통째로 해제되는게 게 형평에 맞느냐는 의문이다. 2심은 다른 해제사유와의 체계적 균형까지 세심하게 따졌다. 한편, 분양계약서는 대량계약의 성격상 약관규제법의 통제 대상이 될 수 있고, 2심도 약관해석 원칙 위반 여부를 다루었다. 다만 이 사건 해제조항은 경제적 약자인 수분양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어서, 약관의 불공정성 통제와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문언 우선의 원칙을 고수한 것은, 분양사업자가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그 문언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건축물분양법이 수분양자 보호를 위해 해제사유의 고지를 강제한 입법 취지를 존중한 결과로 읽힌다.
이 판결은 분양시장 양쪽에 실질적 파장을 미칠 것이다.
분양사업자로서는 경미한 행정 위반이라도 안이하게 넘길 수 없게 되었다. 광고 하나, 계약서 기재사항 하나로 전체 수분양자가 계약해제를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판결로 확인된 셈이다.
수분양자로서는 계약서에 적힌 해제조항의 실효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다만 이번 판결은 파기환송이므로, 환송심에서 다른 쟁점이 다루어질 여지는 남아 있다. 가령 약정해제의 경우 법정해제와 달리 손해배상청구가 당연히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사건 원고들은 계약금 반환과 함께 위약금도 청구하고 있어 그 인정 범위가 환송심의 쟁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판결이 말하는 바는 간명하다. 계약서에 써 있는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분양사업자든 수분양자든, 도장 찍기 전에 한 줄 한 줄의 무게를 다시 가늠해 볼 일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