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다 욕하면 "너 고소"…'기분상해죄' 남발에 수사력 낭비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06일, 오전 05:57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온라인상에서 상대의 언행에 성적 수치심 등을 이유로 고소하는 소위 ‘기분상해죄’가 남발되면서 경찰 수사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예훼손, 모욕죄, 통신매체이용음란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0년간 관련 사건은 2배 이상 늘었지만 검찰에 넘기는 사건의 비율은 3분의 1이 줄어서다. 범죄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무분별한 고소가 쏟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 이후 고소를 반려하거나 거부할 법적 권한이 없어 모든 사건을 정식 수사로 처리해야 하다보니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는 사건에 힘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남용되는 고소에 대한 반려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 요건 못 갖춘 명예훼손 고소 남발…경찰 ‘진땀’

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수는 1만 4418건, 이 중 범죄혐의가 입증돼 검찰에 넘겨진 건수는 2956건(20.5%)에 불과했다. 전체 범죄의 송치 비율이 64.1%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격차가 크다.

명예훼손 입건 건수는 2016년 6437건, 송치(기소의견 송치) 비율은 31.5%였다. 이후 입건 건수는 우상향, 송치 비율은 우하향하고 있다. 범죄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소한 문제의 신고가 폭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기분상해죄는 게임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욕설이나 비방하는 글, 혹은 비꼬는 글 등에 대해 고소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경찰측 전언이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해당 플랫폼의 협조를 받고 대상자의 신원을 파악해야 하는 등 많은 시간을 들여 수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플랫폼 기업이라면 난도는 더 높아진다.

결국 고통받는 건 현장 경찰관들이다. 경찰 사이버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게임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발생하는 욕설은 판례상 단순 분노 표출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수사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며 “상당한 시간을 들여 협조를 요청해도 해외 SNS 본사에서 회신이 늦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사이에 카카오톡 등 서버의 데이터 저장 기간이 지나 증거가 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이 범죄 구성 요건이 안된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이를 막을 수가 없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준칙 제16조의2에 따라 경찰관은 고소·고발을 받은 경우 이를 수리해야 하며 수사불개시(반려)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소위 ‘남고소’ 현상은 일본보다 고소율이 10배나 높을 정도로 국가 차원의 큰 문제”라며 “합의금 등을 목적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이 악의적 고소인에게 포획된 것과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민생 범죄는 어떻게 대응하나… 수사 우선순위 정립 시급

문제는 이러한 감정 고소 처리에 수사력이 분산되는 사이 실제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 대응에는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문제가 된 스토킹 범죄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발생(입건) 건수는 2021년 1023건에서 2025년(잠정) 1만 7351건으로 4년 만에 약 17배나 폭증했다.

특히 2024년 발생한 1만 3283건 중 71.7%(9528)가 검찰로 송치됐다. 이는 범죄 혐의가 입증된 사건이 대다수라는 의미다. 증거 확보와 피의자 신문 등 송치까지 가는 과정이 까다로운 고난도 수사가 급증하면서 수사 현장의 업무량이 상당하다는 호소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허수 고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많은 경찰이 질 높은 치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이 교수는 “개별 업무 담당자는 추후 책임추궁에 대한 부담으로 그냥 고소를 접수하는 경향이 크다”며 “공공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탐정제도를 활성화 해 개인적 분쟁은 자비로 부담토록 유도하고 수사기관은 명백한 불기소 사유 시 고소장을 반려할 수 있는 재량권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