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쪼개기 교섭' 현실화…원청 1곳이 하청노조 3곳꼴 교섭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전 05:31

[세종=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이 시행된지 한 달 만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이 속속 나오면서 원·하청 교섭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는 하루빨리 원청과 하청노조가 교섭 테이블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라는 입장이지만, 민간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기업 중에선 포스코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으며 하청노조 3곳을 포함해 매년 4개의 노조와 교섭을 진행해야 하는 처지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9일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전국 지방노동위는 11개 원청에 대한 사용자성 판단과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결정했다. 서울지노위(국민은행·하나은행·KB국민카드), 경북지노위(포스코이앤씨), 충남지노위(동희오토), 전남지노위(한국전력)는 하청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제주지노위(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반면 서울지노위와 울산지노위는 각각 쿠팡CLS와 SK에너지·에쓰오일·고려아연을 대상으로 하청노조가 신청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하청노조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판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청노조와 원청노조는 기본적으로 원청과 따로 교섭할 수 있지만, 같은 하청노조 사이에서는 단일화가 원칙이라 교섭단위를 분리하고 싶다면 노동위의 판정이 필요하다.

이번 주부터 줄줄이 결과를 내고 있는 노동위 판정은 사실상 하청노조의 압승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경북지노위가 지난 8일 포스코의 하청노조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모두 인용한 결정이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민간 기업이자 대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사건이다. 교섭단위 분리의 경우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교섭단위 분리가 인용된다는 건 원청의 사용자성도 인정된다는 뜻이다. 이번 노동위 결정에 따라 포스코는 앞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3곳 등 총 4개 노조와 매년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이날 결정을 앞둔 교섭단위 분리 사건들도 사실상 대부분 인용될 가능성이 높아 ‘쪼개기 교섭’에 대한 원청의 부담감은 커지고 있다.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하청노조 987곳에서 368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14만명이 넘는 규모다. 노동위에 접수된 교섭 관련 심판 사건은 3일 기준 273건이며,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에 접수된 질의는 지난달 30일 기준 65건이다. 오는 10일에는 전남지노위(중흥토건), 경북지노위(영진종합건설)의 원청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정부는 포스코 등 개별 사건 결과가 모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한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다른 기업의 사용자성까지 인정되는 건 아니다”라며 “개별 사건별로 사례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재우 국민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확대하면서 노사 분쟁은 더욱 커질 것이고 노사 간 신뢰도 또한 떨어질 수 있다”며 “법이 적용되는 범위도 여전히 모호한 만큼 기업들이 하청을 해외 외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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