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못 준 진료비 주느라 2200억 지출…의료급여 재정 '비상'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전 06:16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정부의 의료급여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올 하반기 또 다시 재정 공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2년간 1조 2000억원의 예산을 불용 처리하고도, 정작 지난해 약 2200억원읜 미지급금이 발생해 올해 예산으로 ‘돌려막기’ 하고 있어서다. 이미 올해 초 수급자 수가 정부 예상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재정이 조기 소진될 경우 저소득층 의료 안전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급여 사례관리자가 입원 중인 수급자에게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사진=뉴스1)
◇지난해 미지급금 올해 예산 선집행…하반기 재정 빨간불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사업의 재정 부족을 이유로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실제 수급자 수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면서 연내 예산 부족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의료급여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의료비 대부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매년 의료수급자를 예측해 예산을 편성한 뒤 이를 건강보험공단에 교부한다. 건보공단은 이를 토대로 병원과 약국이 청구한 진료비와 약값을 지급한다.

문제는 예산 운용이 해마다 극단적인 냉온탕을 오간다는 점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의료급여 사업 불용액은 약 7000억원, 2024년에는 약 5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지난해에는 예산이 모자라 의료기관과 약국에 지급해야 할 진료비 약 2200억원을 제때 집행하지 못했다. 이는 2019년 이후 6년 만에 재발한 대규모 미지급 사태다.

복지위는 특히 지난해 발생한 미지급금을 올해 예산에서 미리 끌어다 쓴 점을 문제로 짚었다. 당초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던 지출을 선집행하면서 올해 재정 여력을 미리 소진했고, 이로 인해 하반기 추가 재정 부족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수급자 증가세는 예사롭지 않다. 지난 2월 기준 의료급여 수급자는 163만 9000명으로, 본예산 편성 당시 예상한 연평균 수급자 160만 6000명을 이미 3만명 이상 넘어섰다. 2023년 152만명 수준이었던 수급자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어 지출 부담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수급자 추계 정확도 높이고 이용 효율화 방안 추진해야

이번 추경으로 의료급여 사업 예산은 본예산 9조 8399억원에서 10조 1228억원으로 2828억원 늘었다. 그러나 복지위와 국회예산정책처는 모두 단순 증액만으로는 미지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수급자 변동에 따라 지출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인 만큼 예산 추계의 정확도를 높여야 대규모 미지급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위는 “이번 추경이 당장의 의료급여 공백 대응이라기보다 연말 재정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의료급여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예산을 편성하되, 미지급금 등 추가로 필요한 예산의 규모를 면밀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추경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예산 부족으로 미지급금이 발생할 경우 재정이 취약한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급여 수급자 진료 기피가 나타나고, 이는 취약계층의 접근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정 규모의 예산을 사전에 정확히 편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단순한 수요 예측 오류라기보다 제도 변화에 따른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케어’ 시행으로 비급여가 급여로 전환되면서 진료비 단가가 상승했고, 2019년 이후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수급자가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장 범위 확대와 수급 기준 완화가 맞물리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예산 추계가 실제 수요를 완벽히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책적 요인으로 발생한 예산과 실제 지출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의료급여가 정부가 수가와 본인부담률만 설정하고, 실제 지출 규모는 환자와 의료기관의 이용에 따라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집행 총량을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변동성이 내재해 있다고 봤다. 다만 본인부담이 낮은 구조상 의료 이용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유인이 부족한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수급자가 늘어난 점도 있지만 본인 부담이 거의 없는 구조적 특성상 과잉 진료나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제어할 유인이 적은 것도 사실”이라며 “필수 의료는 보장하면서도 필수성이 낮은 진료에 대해서는 본인부담률을 정교하게 조정하는 등 이용 효율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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