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전시, 드러나는 자원…그린란드 자원전쟁, 중동으로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사회

뉴스1,

2026년 4월 11일, 오전 07:30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도로시 살롱에 안준 작가의 사진전 '에페메럴 에페메럴'(Ephemeral Ephemeral)에 빙하 사진이 전시돼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갤러리 흰 벽에 인쇄된 사진이 인상 깊다. 큰 해빙, 사진 한 장에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빙하 4장이 연달아 벽에 인쇄돼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 모습이다. '벚꽃 엔딩'을 부른 봄비 여파로 전시장 안은 극(極)지방을 연상시킬 만큼 서늘했다.

약 2주간 전시가 끝나면 이 벽은 페인트로 덧칠되고 작품은 사라질 전망이다. 벽에 인쇄하기 위해 '월 펜'(Wall Pen)까지 들였으나, 작가는 "사라지는 것까지 전시"라고 했다.

사진작가 안준(일본 나라여대 특임교수)은 '에페메럴 에페메럴'(Ephemeral Ephemeral)이라는 제목으로 그린란드 모습을 소개했다. 에페메럴은 모든 것이 유한하며 '일시적'이라는 의미다. 안 작가는 빙산과 죽은 동물 등을 병치해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작동하는 세계의 모습을 그렸다.

사진 속 한가로운 그린란드는 지난해부터 지정학적 긴장의 중심에 섰다. 군사적 요충지이자 미개발 에너지 자원의 보고(寶庫), 저온 환경을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입지로도 거론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국 정부 등엔 기후변화에 따른 해빙으로 '북극 항로' 이용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전 세계적 관심이 집중된 셈이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변화로 북극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항로와 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는 동시에, 이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도 함께 확대될 것으로 봤다. 북극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 에너지와 물류 경쟁이 현실화한 공간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에 미국 정치권은 그린란드를 단순한 덴마크 자치령이 아닌 전략 자산으로 인식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말부터 그린란드 확보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 왔고, 2025년에는 병합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후 2026년 들어서도 협상 카드로 활용하며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도로시 살롱에 전시 중인 안준 작가의 사진 '전제'(前提, The Premise) © 뉴스1

이런 흐름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충돌과 맞물린다. 미국은 군사작전의 명분으로 '미국인 보호'와 '선제적 억제'를 내세우지만, 실제 핵심은 에너지와 해상 교통로를 둘러싼 패권 경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그린란드와 중동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구조는 닮아 있다. 한쪽은 얼음이 녹으며 자원이 드러나는 공간이고, 다른 한쪽은 이미 드러난 자원을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에페메럴 에페메럴'은 이를 '사라짐'과 '드러남'의 동시성으로 보여준다. 빙산은 소멸하지만, 그 소멸은 누군가에게 접근과 개발의 전제조건이 된다. 전시장 벽에 직접 프린트된 빙산 이미지가 전시 종료 후 페인트로 지워지듯, 소멸은 어떤 권력에는 새로운 진입로가 된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를 넘어, 어떤 권력은 이미 채워진 공간에도 압력을 가해 기존 질서를 밀어내고 자리를 점유한다.

2주 뒤 전시장 벽의 빙산은 지워진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가리키는 방향은 더 또렷해진다. 그린란드에서는 얼음이 녹으며 자원이 드러나고, 중동에서는 그 자원을 둘러싼 충돌이 이어진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갈등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의 에너지는 여전히 군사와 권력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그 흐름이 계속된다면, 사라지는 것은 빙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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