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터져요!"...'129명 참사' 사장님 구한 영웅의 해고 사유 [그해 오늘]

사회

이데일리,

2026년 4월 15일, 오전 12:03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비행기 터져요! 어서 내려가세요! 비행기 폭발해요!”

24년 전 오늘, 김해시 돗대산 정상에 추락한 중국 국제항공 CA-129편 여객기 주변을 돌며 이같이 소리친 남성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여행사 수습사원으로, 단체 관광객을 인솔해 처음 중국 베이징에 갔다가 돌아오며 해당 여객기를 탔던 설익수(당시 25세) 씨다.

설 씨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항공 사고 생존자다.

여객기 추락 뒤 빛을 따라 밖으로 기어나온 설 씨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비행기 잔해 등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그 순간, 기체에서 새어나온 기름 냄새를 맡은 설 씨는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뛰기 시작했다.

추락 현장 인근에 있던 무덤 뒤로 몸을 피한 설 씨는 비행기가 터지기 전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그 주변으로 향했고, 자신의 몸무게보다 10㎏ 이상 더 나가는 남성을 한손으로 옮기는 등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20여 명을 대피시켰다.

설 씨는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을 담뱃갑 속 은박지와 허리띠 등으로 지혈하는 등 응급처치에 나서기도 했다. 설 씨 역시 머리와 얼굴 등에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의 옷을 벗어 부상자들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체 곳곳에서 폭발이 잇따랐고, 119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비행기는 화염에 휩싸인 채 불기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비규환 속 부상자들은 들것에 실리거나 구조대에 업혀 현장을 벗어나는가 하면,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가파른 산길을 스스로 헤쳐 나와야 했다.

사고를 목격한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은 현장으로 달려가 필사의 구조작업을 도왔다.

이날 조종사와 승무원 포함 166명이 타고 있던 여객기 추락 사고로 한국인 111명을 포함해 129명이 숨지고, 37명이 상처를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 2명은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고 원인은 사고 발생 2년 만인 2005년 5월 조종사 과실로 밝혀졌다. 해당 기장은 생존했음에도 중국으로 돌아간 뒤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손해배상 소송도 이듬해 12월에서야 첫 재판이 열렸다.

일부 유족은 중국 항공사 측과 개별 접촉해 보상금을 받고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1심과 항소심을 통해 사망자 1인당 8000만 원~1억5000만 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이 났는데, 유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했으나 2009년 대법원 판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하게 훼손된 희생자들의 시신은 관련 소송이 길어진데다 사고대책위원회와 중국 항공사 측의 유골함 보관료 갈등으로 사고 10년 6개월 만에 안치됐다.

설 씨는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아시아의 20대 영웅’에 이름을 올리는 등 주목을 받았지만,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는 2021년 11월 EBS ‘파란만장’에 출연해 “사고 당시 제가 사장님을 업어서 구출했다. 사장님이 다음날 ‘살려줘서 고맙다’고 전화를 하셨는데, ‘회사가 생긴 저 얼마 안됐는데 사고 보상이나 산재 처리를 하는 건 부담스럽다’며 퇴직 처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후 치료비, 사업 실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알코올 의존증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행히 3년 전 술을 끊고 재기에 성공한 설 씨는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난 2004년 11월 김해시 상동면에는 사망자 129명을 기려 높이 12.9m의 추모탑이 세워졌다. 현재 사고 현장에는 위령비와 돌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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