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우동 전문점 계산대 옆.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편지가 눈에 띈다. 이곳을 다녀간 꼬마 손님이 남긴 감사 인사다. 식당 문 앞에는 ‘키즈 웰컴(Kids Welcome)’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고, 점심시간 매장 안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온 가족 단위 손님들로 활기가 넘친다. 여느 식당에서는 아이가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부모가 주변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지만, 이곳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3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우동 전문점 계산대 옆에 아이들이 쓴 감사 편지가 붙어 있다. (사진= 이유림 기자)
우동집 사장 엄광현(50) 씨는 5년 전 가게 문을 열 때부터 ‘아이를 위한 공간’을 세심하게 설계했다. 자외선 소독기 안에는 알록달록한 유아용 수저와 그릇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아기 의자는 물론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줄 장난감까지 구비했다.
엄 씨는 “아이도 어른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손님”이라며 “어떻게 하면 아이가 부모와 함께 불편함 없이 식사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음식이 나오기 전 대기하는 5분이 가장 고비다. 그 시간을 무사히 넘겨야 평화로운 식사가 시작되기에 장난감을 놔뒀다”며 “몇 년째 장사를 하다 보니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이 훌쩍 커서 다시 찾아오는 게 큰 보람”이라고 웃어 보였다.
가게 입구에 붙은 '키즈 웰컴(Kids Welcome)' 안내 문구, 오른쪽은 어린이 손님을 위해 구비된 장난감(사진= 이유림 기자)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듯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키즈 오케이존’ 참여 매장은 지난해 700개소를 넘어섰다. 강동구가 참여 매장이 40여 개소로 가장 많았고, 동대문구와 노원구가 그 뒤를 이었다. 서울시는 양육자가 눈치 보지 않고 외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키즈 메뉴 판매 등 요건을 충족한 업소를 지정·관리하며, 유아용 식기나 의자 구매를 위한 30만 원의 지원금(최대 1회)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시는 2026년까지 이를 1000개소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예스키즈존(Yes Kids Zone)’ 여부는 맛보다 우선하는 선택 기준이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가족 동반 모임을 계획 중인 정모(31) 씨는 “아무리 맛집이라도 아이가 불편해할 분위기라면 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말했다. 8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이모(30) 씨 역시 “외식 장소를 찾을 때 리뷰에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대로 아이를 반기는 매장은 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며 ‘돈쭐(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신조어)’ 대상이 되기도 한다. 4살과 6개월 된 두 자녀를 둔 김모(34)씨는 “수유실과 기저귀 교환대를 갖춘 곳을 발견하면 또래 엄마들과 즉시 공유한다”며 “이렇게 검증된 곳은 재방문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아이의 출입을 원천 금지하기보다 구역을 나누거나, 보호자의 적극적인 보호와 훈육을 전제로 하는 ‘키즈케어존(Kids Care Zone)’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과거 노키즈존을 고수하던 업주들도 점차 유연한 태도로 돌아서는 추세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성모(50) 씨는 “예전에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일부 부모들로 인해 갈등이 많았지만, 요즘은 부모들도 공공 에티켓을 지키려 노력하는 게 눈에 띈다”며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손님을 가려 받기보다, 서로 조심하며 공존하는 편이 운영 면에서도 훨씬 낫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 친화적인 외식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매장 내 안전사고 책임 분담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키즈 오케이존’ 같은 정책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업주의 심리적·경제적 문턱을 낮춰주는 지속적인 유인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키즈존은 차별이다’ 캠페인을 전개해 온 ‘정치하는 엄마들’ 등 시민단체는 최근 자료집을 통해 “아동 안전사고 발생에 관한 책임을 덜기 위해 소규모 영업장의 배상 책임 위험을 완화하는 공동책임보험 모델을 도입·지원해야 한다”며 “나아가 보호자 책임·사업자 의무·직원 응대절차 등을 종합한 표준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울키즈 오케이존 확대 등 아이를 환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이런 업소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홍보와 함께 추가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