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 찬 채 병상서 남긴 유언…대법 "구수증서 효력 인정 여지 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04일, 오전 06:01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산소호흡기를 단 채 임종 직전 병상에서 어눌하게 남긴 유언을 무효로 본 법원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말 몇 마디 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정식 녹음 유언이 가능했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김모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예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환송했다.

망인 박모씨는 2021년 4월 23일 증인 2명과 수증자인 김씨가 입회한 가운데 우리은행 예금채권 3건과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등 재산 전부를 김씨에게 증여한다는 취지를 구술했다. 증인 한 명이 이를 받아 적어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변호사인 다른 증인이 전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했다. 박씨는 유언 사흘 뒤 사망했다.

영상 속 박씨 상태는 심각했다. 산소호흡기와 각종 의료기기를 단 채 숨쉬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계좌번호 등을 간신히 말하는 수준이었다. 유언 전체를 스스로 이어 말하지 못했고, 일부 금액 등 세부 사항은 제3자 도움을 받아 기억을 더듬어 전달했다.

김씨는 유언 7일 후 서울가정법원에 검인을 신청해 인용됐고, 우리은행에 예금 9600만여원 지급을 요청했으나 은행 측이 거절하자 2022년 8월 소송을 냈다.

이 사건 핵심 쟁점은 해당 유언이 민법상 ‘구수증서 유언’으로서 효력이 있느냐였다. 구수증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 등 다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할 때만 허용되는 최후 수단이다. 박씨가 당시 녹음 유언을 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가 관건이었다.

원심은 유언 효력을 부정했다. 박씨가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를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던 만큼 녹음 방식 유언이 불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박씨가 계좌번호 두 개를 어눌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던 건 의식이 또렷했다는 사정일 뿐, 유언 전체 취지를 직접 육성으로 녹음하는 정식 절차를 완수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의미와는 다르다고 짚었다. 당시 건강 상태에 비추어 자필증서·녹음 등 방식의 유언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했던 경우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원심이 이를 면밀히 심리하지 않고 구수증서 유언 효력을 부정한 건 법리 오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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