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방문한 울산 울주군의 고려아연 사업장. 사규상 이미 정년을 넘긴 61세 근로자 3명이 작업복 차림으로 모였다.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는 이들은 미국 제련소 건설사업부에서 설계를 지원하는가 하면, 기존 공장의 설비 개선에도 참여하며 현역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30년간 축적한 현장 경험을 신입사원들에게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선배’가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의 강점을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고려아연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에 참여 중인 권오영(왼쪽부터), 김의식, 조영렬 씨. (사진=보건복지부)
조영렬(61) 씨는 “예전에는 몸으로 부딪히며 기술을 배웠는데 요즘 직원들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해도 현장에서 배울 기회가 적다”며 “매뉴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권오영(61) 씨도 “제련소는 워낙 고온의 작업환경이라 베테랑도 긴장하면서 일을 한다”며 “은퇴하고 한 발 물러나 전체 공정을 보다 보니 오히려 큰 흐름이 보인다. 후배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다독이며 경험을 전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선배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세대통합형 노인일자리 사업이 있어서다. 숙련기술을 보유한 퇴직자를 청년 멘토로 6개월 이상 채용한 기업에 1인당 300만원 인건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취지에 공감한 기업들이 생기며 지난해 약 500개 기업이 참여했고 수혜 인원은 2227명에 달했다.
정성우 고려아연 인사팀장은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줄인다고 보기도 한다”며 “현장에서 직접 소통해보면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다”고 전했다. 이어 “설비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만큼 기존 공장을 그대로 옮길 수 없다”먀 “30년 넘게 현장을 지켜온 분들의 경험과 판단이 큰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산 금정구에도 노인들이 후배 세대의 배움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우리동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센터’가 있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놀이공간을 만드는 노인일자리다.
미니언즈와 뽀로로 장난감이 매달린 2m 높이 트리부터 레고로 만들어진 화장실 표지판까지 센터 곳곳의 작품은 모두 폐플라스틱을 재료로 만들었. 지역 아동들은 센터를 찾아 블록이 가득한 체험 공간에서 놀고 재활용 장난감도 가져갈 수 있다.
과거 노르웨이 선급협회에서 일한 이충남(67) 씨는 이곳에서 ‘만능 맥가이버’로 통한다. 이씨는 “고장난 물품을 수리해서 제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재미를 붙여 지난해 장난감 128개 중 125개를 고쳤다”며 “기판이나 칩이 손상돼 수리가 잘 안되면 어떻게 고칠까 생각에 밤잠이 안 올 정도”라고 했다.
부산 금정구 우리동네ESG센터에서 장난감을 분해하는 어르신들의 모습. (사진=보건복지부)
노인일자리는 흔히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최근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젊은 시니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해 오히려 젊은 세대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저숙련 활동인 ‘공공형’보다 전문성을 활용하는 ‘사회서비스형’, 노인을 채용한 기업을 지원하는 ‘민간형’ 비중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 노인일자리 115만개 중 사회서비스형과 민간형은 38.5% 수준으로 정부는 내년까지 이를 41.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생산연령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노인 고용 확대가 오히려 사회 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51만 4000명(20.3%)으로 집계됐으며 2050년에는 40.1%로 증가할 전망이다. 결국 노령세대가 양질의 일자리를 얻어야 노년부양비가 자연스레 줄고 국가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자기계발을 하려는 영 시니어들의 의지도 크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일자리사업 참여노인의 연령집단별 변화 추이’에 따르면 74세 이하 노인 중에서는 민간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비중이 지난해 12.5%까지 상승했다. 같은 응답에서 75세 이상 노인들이 2.8%의 응답률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수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노인일자리는 교통안전지킴이나 환경 정비 같은 단순 업무로만 보는 게 대부분 국민들의 인식”이라며 “20주년을 맞은 노인일자리가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된 모습을 봐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