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조작' 국가 상대 손배소 파기환송 3년6개월만 결론…책임 일부 인정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21일, 오후 06:07

[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노태우 정권 당시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나선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대법원이 지난 2022년 ‘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는 장기소멸시효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지 3년 6개월 만의 결론이다. 다만 파기환송심에서도 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했지만 과거 검찰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했다는 것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CG)(사진=연합뉴스TV)
서울고법 민사5-1부(재판장 송혜정)은 21일 오후 2시 강씨와 그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강씨에게 약 5333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고 가족 3명에게는 각 400~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구체적인 판결 이유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밝히지 않았다.

유서 대필 사건은 지난 199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촉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투신하자, 친구인 강씨가 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은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며 자살방조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에 강씨는 징역 3년을 확정받고 복역했으나, 2015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유죄 증거로 활용됐던 필적 감정서가 위조된 점이 인정되면서다.

강씨는 국가 및 수사검사, 감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7년 1심은 수사과정에서 개별 불법행위는 인정되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가와 감정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만을 인용했다.

강씨는 항소했고 2018년 2심 재판부는 감정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배상 책임 범위를 더욱 좁게 판단했다. 특히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검사들의 기소 및 수사 전반에 대한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유서 대필 사건의 조작을 공식 인정했고, 대법원은 2022년 수사과정의 개별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을 부정한 원심 파기 환송했다. 중대한 인권 침해 또는 조작의혹 사건에서는 장기소멸시효를 적용해서는 안되고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파기환송심이 2022년 11월 시작됐으나 법무부와 대검은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까지 제기해 승소해 파기환송심 재판이 재개됐다.

강씨 측은 “개별불법행위와 조작 등 수사 전반의 불법행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날 개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위자료를 상향했다.

강씨 측 공동대리인 김묘희 변호사는 “위자료를 얼마 더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법원이 이번 사건을 개별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문제로만 한정하고, 검찰이 주도한 수사 전반과 공소제기·공소유지의 불법성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본질을 또다시 외면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실체적 진실 외면한 법원의 오판으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권력이 한 번 거짓을 기획했을 때 그 폭력이 한 개인의 존엄과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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