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법인의 디지털자산 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열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을 열어도 시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허용 여부는 이 시점에서 가장 논쟁적인 의제다. 한쪽은 투기를 부추기는 위험한 장치라 경고하고 다른 쪽은 시장 성숙의 필수 인프라라 주장한다.
전통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부터 자산 가치를 방어하는 인프라다.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미래에 거래하기로 약속하거나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행위는 가격 변동이라는 통제 불능의 변수를 관리 가능한 상수로 바꾸는 과정이다. 원자재나 외환 시장에 이 안전장치가 없다면 기업들은 가격 급등락에 무방비로 노출돼 장기적 사업 계획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디지털자산 시장에서도 파생상품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변동성이 극심한 자산 특성상, 현물 거래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폭풍우에 닻 없이 항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 국내 시장에 가격 하락에 대응할 ‘숏 포지션’이나 헤지 수단이 없다는 것은 리스크 통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기관이 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투자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보유·운용·리스크 관리라는 운용의 완결성을 뒷받침할 제도적 도구가 부족해서다. 법인 참여가 허용되더라도 우산 없이 빗속에 서게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자본 유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파생상품이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레버리지는 작은 변동에도 원금을 날릴 수 있는 독이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높은 레버리지 구조와 강제 청산 메커니즘이 맞물리면 시장 전체의 변동성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된다. 따라서 도입 논의는 ‘허용 여부’ 자체보다 ‘어떤 질서와 규율 속에 담아낼 것인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레버리지 수준의 제한이다. 무제한적인 투기적 배팅을 억제하고 투자자의 경험과 자산 규모에 따라 접근 권한을 차등화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적합성 원칙’의 적용도 빠질 수 없다. 전통 금융에서 고위험 상품에 적용하는 것처럼 상품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고 손실 감내 능력이 검증된 참여자에게만 시장을 여는 보호 장치가 필수다.
증거금 설정과 청산 기준도 시장 안정성을 좌우하는 설계 요소다. 초기 증거금이 느슨하면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고 과도하게 엄격하면 유동성이 위축된다. 법적·경제적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현물과 파생 시장 간 가격 연계를 악용한 시세조종, 정보 비대칭 문제를 감시할 정교한 시장 감시 체계와 데이터 분석 역량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이 CLARITY Act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디지털자산을 금융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되 명확한 관할과 책임 구조를 함께 짠다는 원칙이다. 미국이 ‘규제 명확성’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의 제도화에 나선 이 시점에 한국이 여전히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리스크다.
디지털자산 시장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현물 중심의 단순한 시장에 머물 것인가, 위험 관리 기능을 갖춘 고도화된 금융시장으로 진화할 것인가. 파생상품에 대한 제도적 설계 역량이 곧 우리 시장의 실력과 신뢰를 결정짓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기동 대표변호사=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 원전비리수사 단장, 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중요 수사 부서 책임자를 도맡았다. 기업·금융 분야 로펌 로백스(LawVax)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융 전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