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했다. 녹색당 등 일부 소수정당은 친환경·지속 가능한 선거를 외쳤지만, 눈앞의 당락과 노출 경쟁 앞에서 형형색색 현수막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정당에서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별 기후 공약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선거로 출범할 민선 9기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이라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중간 단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원내정당 중 기후대응 목표를 제시한 정당은 진보당이 유일했다. '기후 유권자'는 있는데 '기후 공약'은 실종됐다.
선거는 끝나도 현수막은 남는다. 문제는 6월 4일 이후다. 수많은 현수막은 철거 뒤 상당량이 폐기되거나 소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폐현수막 발생량은 4971톤이었다. 재작년 5409톤보다는 8% 줄었지만, 여전히 작지 않은 규모다. 재활용률은 2024년 33.3%에서 지난해 48.4%로 상승했으나 여전히 상당수는 '정치선전 쓰레기'가 된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행정안전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20일 '제3회 폐현수막 자원순환 경진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 등이 참여해 현수막 발생을 줄이고 재활용을 확대하는 사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경진대회 이후 폐현수막 관련 조례도 늘었다. 2024년 5월 기준 5건이던 관련 조례는 올해 5월 126건으로 증가했다.
앞서 선거철마다 폐현수막으로 재킷이나 장바구니(에코백)를 만드는 시도는 꾸준히 나왔다. 다만 일회성 행사나 단편적 캠페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정치 현수막 몸살'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이런 쓰레기를 예술과 패션으로 확장하는 사례가 등장한 바 있다.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1일 서울 은평구의 한 거리에서 폐지 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여야 후보자들의 선거 현수막 앞을 힘겹게 지나고 있다. 2026.5.21 © 뉴스1 오대일 기자
대표적인 사례가 멕시코 패션 디자이너 카밀로 모랄레스(Camilo Morales)다. 그는 지난 2024년 멕시코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거리 곳곳에 걸린 정치 광고 현수막을 뜯어 가방과 의류, 액세서리로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멕시코는 당시 첫 여성 대통령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이 당선된 선거였다.
모랄레스는 플라스틱 장바구니와 자투리 천 등을 재활용해 온 디자이너다. 선거철이 되자 거리마다 걸린 후보 현수막을 새로운 재료로 삼았다. 그는 현수막을 잘라 토트백으로 만든 뒤 100~600페소(한화 약 7000~4만 원)에 판매했다. 일부 제품은 후보 얼굴 일부나 색상을 그대로 살려 정치 광고물의 흔적을 남겼다.
당시 멕시코시티에서는 선거 기간 정치 광고물로만 약 1만 톤의 쓰레기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수막에는 재활용 표시가 붙어 있지만, 상당수는 PVC 재질이라 실제 재활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후안 마누엘 누네스 멕시코 이베로아메리카대 교수는 "친환경처럼 홍보되지만, 이런 현수막은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정치문화의 전환을 당부했다.
현수막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플라스틱 쓰레기이기도 하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 풍경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지만, 현수막 자체는 오래 남는다.
현수막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플라스틱 쓰레기이기도 하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 풍경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지만, 현수막 자체는 오래 남는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는 이제 공약만이 아니라, 선거가 남기는 쓰레기까지 설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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