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거르면 우울증 위험 더 커진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5월 26일, 오전 10:08

[이데일리 이순용 의학전문기자] “바쁘다는 이유로 아침을 걸렀고, 점심은 때를 놓쳤고, 퇴근 후 집에 오니 저녁 9시가 넘어 배가고파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한국을 사는 성인에게 낯설지 않은 하루의 풍경이다. 한국 성인의 이와 같은 불규칙한 식사 습관이 신체 건강 뿐 아닌 우울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대규모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태혜진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 (교신저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은 최근 2만 명이 넘는 한국 성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무엇을 먹느냐’와 ‘어떻게 먹느냐’, 즉 식사 패턴의 규칙성과 다양성이 정신건강의 핵심 열쇠임을 확인한 연구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우울증은 전 세계 장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그 예방과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3.8%, 약 2억 8,00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인한 연간 생산성 손실은 약 1조 달러(약 1,500조 원)에 달한다.

연구팀은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의 2014년부터 2022년까지의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 성인 2만1,568명을 분석했다. 우울 증상을 환자건강설문지(Patient Health Questionnaire-9 ,PHQ-9)로 평가하고, 다변량 로지스틱 회귀분석 등 통계적 기법을 적용해 불규칙한 식사 빈도와 우울 증상 간의 연관성을 체계적으로 검증했다.

그 결과 주요 식사가 불규칙한 성인은 규칙적인 성인에 비해 우울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약 1.5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연관성은 소득, 교육, 흡연, 음주, 운동, 기저질환 등 다양한 교란 변수를 보정한 이후에도 일관되게 유지됐다. 전체 참여자 중 5.2%(1,131명)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우울 증상을 보였으며, 이들 집단에서 불규칙 식사 빈도와 아침 결식 비율이 모두 유의하게 높았다.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불규칙 식사 자체뿐 아니라, 이를 ‘완화’하거나 ‘악화’하는 요인들 역시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식사 다양성(Dietary Diversity Score)을 곡류·채소·과일·육류·두류 및 견과류·유제품 등 6개 식품군의 섭취 여부로 계산했는데,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섭취할수록 불규칙 식사가 우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식사 다양성이 낮은 집단에서는 불규칙 식사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침 식사는 ‘정신건강의 완충막’으로서의 역할이 확인됐다. 아침을 자주 거르는 사람에서는 불규칙 식사와 우울 증상 간의 연관성이 더욱 강화됐으며, 아침을 거르지 않는 경우에도 불규칙 식사의 위험은 유의하게 존재했지만 그 강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구팀은 이 배경으로 아침 식사가 하루의 대사 리듬과 행복호르몬 세로토닌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를 안정화해 정서 조절 능력을 지지하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또한 성별·흡연 여부·야식 습관에 따른 하위 집단 분석에서는 남성, 흡연자, 야식 습관이 있는 성인에서 불규칙 식사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이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이는 특정 생활습관 집단에 대한 보다 집중적인 식생활 개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나아가 불규칙한 식사가 장내 미생물 구성과 일주기 리듬을 교란하고, 장-뇌축(gut-brain axis) 만성 활성화와 신경염증을 유발함으로써 우울증 발생에 기여한다는 기존의 생물학적 기전과 연결하여 설명 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무엇을 먹는가’뿐만 아니라 ‘언제 먹는가’가 건강과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시간영양학 (chrono-nutrition) 기반 정신건강 중재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태혜진 교수는 “우울증 예방에 있어 무엇을 먹느냐는 물론, 얼마나 규칙적으로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대표성 있는 대규모 데이터로 입증한 데 의미가 있다”며, “규칙적인 식사, 아침 결식 예방, 다양한 식품군 섭취라는 세 가지 원칙은 약물 치료 없이도 일상에서 즉시 실천할 수 있는 우울증 예방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교신저자인 채정호 교수는 “우울 증상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면, 활동, 식사처럼 일상의 리듬 전반과 맞물려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식사 습관 교정이라는 작은 요소가 정신건강 관리의 보조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정신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6월호에 실렸다.

식사가 불규칙할수록 우울 증상은 꾸준히 높아진다. 가로축은 식사 불규칙 정도(0점=가장 규칙적 → 3점=가장 불규칙), 세로축은 우울 증상 점수(PHQ-9)의 변화량을 나타낸다. 식사가 불규칙 할수록 우울 증상이 꾸준히 심해지는 것을 확인했고, 나이, 소득, 흡연, 운동 등 다른 영향 요인을 보정후에도 같은 경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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