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지난해 한 10대 청소년이 아버지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학교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아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전화로 “집에 오면 때려 죽이겠다”고 욕설했다는 것이다. 출동한 경찰은 아동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아동학대 신고가 매년 급증세다. 하지만 신고의 상당수는 범죄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부모나 교사를 향한 분풀이식의 신고인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 사이에서 학대 신고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아지면서 무분별한 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탓으로 해석된다.
이런 문화가 번져나갈 경우 가정의 훈육 기능이 마비될 뿐만 아니라 치안력 낭비도 일어나 실제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대 아동에 대한 조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이데일리가 이주영(개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112신고 건수는 3만 6257건에 달했다. 아동학대신고는 △2021년 2만 6048건 △2022년 2만 5383건 △2023년 2만 8292건 △2024년 2만 9735건 등으로 4년 새 39% 증가했다.
하지만 신고가 입건·송치로 이어지는 숫자는 지난해 1만 4211건으로 집계됐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입건된 사건의 경우 모두 송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2만 2000건 가량의 신고는 입건조차 하지 못하는 분풀이식 신고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분풀이식 신고 비율은 지난해 60.8%를 차지했다. 이 비율은 2022년 52.8%로 낮아졌다가 이후 3년 연속 상승해 지난해 처음으로 60%선을 넘어섰다.
이러한 무분별한 학대 신고의 대부분은 ‘정서학대’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서학대로 입건된 수는 2021년 1681건에서 지난해 4148건으로 약 147% 급증했다. 입건·송치가 되지 않는 건에 대해선 공식적인 분류가 이뤄지지 않지만 학생들이 정서학대를 주장하면서 신고하는 건수가 늘어난 것이 이 같은 급증의 배경이라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경찰청 관계자는 “신고 건수와 입건 건수의 차이는 출동해보니 사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생긴 것”이라며 “아동학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신고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도 나중에 문제가 될지 몰라 웬만하면 정서학대로 구분해 입건하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일선 경찰관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멍이나 상처 등 객관적 흔적을 확인해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은 비교적 쉽지만 정서학대의 경우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불분명해 현장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서다.
경찰 한 관계자는 “아동학대 범위가 폭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학군지의 경우 스트레스가 크다 보니 부모의 거친 말투나 욕설만으로도 정서적 학대 신고가 접수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서학대 신고 급증이 단순히 학대 증가가 아닌 무분별한 신고 문화의 확산과 맞닿아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경우 제한된 경찰력이 허수 신고에 낭비되면서 정작 실제 학대 피해자에게 투입돼야 할 치안력이 분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제한된 경찰력을 국민 치안을 위해 적절히 분배해야 하지만 정서학대와 관련한 무분별한 신고가 현장 경찰력을 잠식하고 있다”며 “치안력이 정말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 제대로 배치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서학대라는 게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개념이다보니 ‘남이 하니까 나도 한번 한다’는 식으로 번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