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 제도의 과제[김기동의 크립토 레이더]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05일, 오전 05:30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가상자산 시장에서 자금세탁 방지 목적으로 ‘고객신원확인’(KYC)과 ‘트래블룰’(Travel Rule, 가상자산 이전 시 송·수신인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는 제도)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을 통해 시행됐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에게는 법적 의무를 부과했지만 해외 사업자 및 비수탁형 지갑 영역은 자율규제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제도 운영 측면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래소 간 트래블룰 시스템 연동이다. 초기에는 거래소마다 다른 솔루션을 써서 시스템이 맞물리지 않아 거래소 간 이전 자체가 막히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상호 연동이 가능해지면서 이종 시스템 충돌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규제 이행 수준도 높아졌다. 2024년 금융정보분석원(FIU) 검사에서 100만원 미만 거래에서도 미신고 사업자로의 이전 사례가 다수 확인되자 주요 거래소들은 소액 거래에도 주소 사전등록과 인증 절차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업비트는 2025년 2월, 빗썸은 4월, 코인원은 5월부터 단계적으로 소액 거래 인증 체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입법적 보완도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100만원 이상 거래에 한해 트래블룰 정보 제공 의무를 부과했으나 금융위원회는 이 기준을 폐지하고 모든 이전 거래에 의무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특금법 시행령·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2024년 말부터 MiCA(EU 가상자산기본법)에서 자금이동규정(TFR)을 시행하며 이미 같은 원칙을 적용 중이다. 금액 무관 트래블룰이 도입되면 소액으로 분산해 미신고 사업자에 송금하는 우회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심거래보고(STR,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하는 제도) 대상에 가상자산 거래를 일괄적으로 포함시키는 방안이 이슈가 됐다. 구체적으로는 1000만원 이상 거래를 그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정상 거래가 기계적으로 신고 대상이 되면 보고 건수만 늘고 정작 의심스러운 거래는 데이터 홍수 속에 묻힌다는 업계의 우려가 컸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해당 항목은 STR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수탁형 지갑에 대한 규율 공백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KYC·트래블룰 체계는 국내 사업자 간 이전에서는 비교적 잘 작동하지만 이용자가 직접 개인키를 관리하는 비수탁형 지갑 구간에서는 한계가 있다. 거래소들은 주소 사전등록과 추가 인증을 강화하고 있다. 업비트는 메타마스크·팬텀·카이아·케플러 등 특정 지갑 앱으로 등록된 주소에 한해 출금을 허용하는 방식을 운영 중이다.

핵심은 비수탁형 지갑 이전에서 송·수신인 신원을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현재 주된 방식은 화이트리스트 등록이다. 이용자가 본인 소유를 증빙한 주소를 사전 등록하고 해당 주소로만 출금을 허용하는 구조다. 한발 더 나아가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의 DS 프로토콜처럼 KYC 완료 이용자의 지갑 주소를 온체인 레지스트리에 등록하고 스마트 컨트랙트 단에서 등록 지갑 간에만 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어느 방식이든 규제 실효성과 이용자 편의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과제는 남는다.

규제의 시야도 국경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외국환거래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이전업’에 대해 기획재정부장관 등록 의무가 부과됐다. 이제 해외 플랫폼으로의 이전 거래도 감독당국의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 여기에 OECD가 주도하는 CARF(가상자산 보고 프레임워크)까지 더해지면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의 상당 부분이 감독 당국의 시야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 흐름을 단순한 규제 강화로 읽어서는 안 된다.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허용,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토큰증권(STO) 도입 등 가상자산의 본격적인 제도권 편입은 거래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지금 진행되는 트래블룰 정비와 외국환거래법 개정은 그 기초공사다. 다음 단계를 위한 인프라가 지금 이 시점에 닦이고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은 제도화의 단계로 들어섰다. 따라서 규제를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할 것인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지난 5년간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시스템은 분명히 발전했다. 그러나 STR의 정밀화, 비수탁형 지갑에 대한 규율 체계 마련은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제도의 완성도는 규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얼마나 일관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김기동 대표변호사=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 원전비리수사 단장, 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중요 수사 부서 책임자를 도맡았다. 기업·금융 분야 로펌 로백스(LawVax)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융 전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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