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인근 티켓 부스에 재선거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6.6.10 © 뉴스1 이호윤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된 잠실 투·개표소 봉쇄 시위가 일주일간 이어졌다. 초기에는 '민주주의의 꽃' 선거 절차가 훼손된 데 대한 분노로 시위 현장에 나온 20·30대가 올림픽공원 앞을 메웠다. 헌법상 권리인 참정권을 침해당한 데 대한 분노가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우 시위대가 등장했다. 극우 시위대가 '재선거'만 외치자는 20·30대를 프락치로 몰면서, 현장은 '참정권 훼손' 주장과 음모론이 혼재되고 있다. 극우 세력이 음모론을 주창하는 장으로 시위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시위에 나온 보수·중도 청년들과 극우의 목소리는 구분해서 이번 사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청년들의 목소리가 오염되지 않기 위해선 시위 참여자들도 극우 주장을 배제해야 한단 분석이 나온다.
"재선거" 외치면 '프락치'라는 부정선거 음모론자…2030 설 자리 좁아져
당초 지선 본투표 당일이었던 3일 밤엔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실제로 투표하지 못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4일 새벽이 되면서 극우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며 합류하긴 했지만 인파는 수백명대에 그쳤다.
시위는 주말인 6~7일을 기점으로 규모가 커졌다. 투표함이 5일 오전 8시 54분쯤 반출되고 나서 시위대는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이후엔 SNS를 통해 시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올림픽공원 앞으로 몰렸다. 20·30대가 많았다. 결국 6일 새벽 6000여명으로 늘어난 인파는 그날 밤 3만여명을 기록했다.
토요일인 6일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 나온 이들은 부정선거론자와 선을 그으려는 나름의 자정 활동을 했다. 구호는 '재선거'로 통일됐고, 태극기와 '재선거'라 적힌 손팻말만 흔들었다. 이들은 △재선거·참정권 침해만 외칠 것 △다른 나라의 국기를 흔들지 말 것 △시비나 마찰에 대응하지 말고 '평화'를 지키라는 내용의 안내문들을 곳곳에 붙였다.
다만 빈틈은 있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들이 다수 시위에 참여해 마이크를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부정선거 음모론자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 미국 리버티대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중국과 북한이 부정선거의 배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땐, 시위 참석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top the steal"(스톱 더 스틸·도둑질을 멈추라) "USA"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번 시위에 참석했지만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20·30대를 자극적인 부정선거론으로 선동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김종우 연세대 사회학과 연구교수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쪽에서 20·30대를 자신들의 운동 안에 포섭하려는 과정에서 '극우냐, 아니냐'의 경계를 흐리려고 하는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정선거를 설파하기 위한 극우 세력의 과격한 행동은 7일부터 본격화됐다. 출근·등교를 위해 20·30대가 빠지기 시작한 오후 7시쯤부터 'CCP OUT'(중국 공산당 물러가라), '부정선거 웬 말이냐?' 등의 손팻말과 성조기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극우 유튜버들은 "'재선거'만 외치자고 하는 사람들은 사태의 중요성을 깎아 먹는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진 않지만 참정권 훼손에 분노하던 20·30대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시위 현장에서 서 있을 곳을 잃었다. 과격한 구호를 외치지 말자고 하면 시위 현장에서 "대진연이다" "프락치다" 등 비난이 돌아오고 실질적 위협을 당했기 때문이다. 여성 유소년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을 막아서고 소지품을 검문검색하고, 경찰에게 '중국 공안'이라며 관등성명을 요구하는 비상식적인 일도 벌어졌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반발한 시민들이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 모여 재선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7 © 뉴스1 이호윤 기자
"잠실 개표소 시위, '서부지법 사태' vs '정상화' 기로에…극우 배제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낸 보수·중도와 극우의 목소리는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시위의 참석자들은 보수와 극우로 분화돼 있는데 마냥 시위 참석자들을 부정선거론자나 극우로 몰아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 청년들도 부정선거에 흔들리지 않고 부실선거를 주장하고, 극우의 목소리를 배제해야 시위에 참여한 20·30 청년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세대론을 연구해 온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한국 청년들이 보수화됐는데, 보수 정당이 극우화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정치 세력은 없는 상태"라며 "우파 청년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이후 극우화된 국민의힘을 보면서 '저 정당이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졌고, 그런 가운데 점점 주변화되고 있는 보통 우파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커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우선 자신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일반 우파는 자꾸 공론장에 나와 부정선거가 아니라 부실선거를 지적해야 한다"며 "극우화된 이들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우파의 목소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젊은 보수·중도가 자신들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공론장을 만들고, 극우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의 몫이라는 게 전문가의 제언이다.
전 교수는 "이번 시위는 '서부지법 사태'가 되느냐, '정상화'가 되느냐의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있다"며 "우파의 목소리가 공론장에서 그대로 대변될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회를 잡지 않으면 우파 청년들이 민주공화국의 바깥으로 스스로 나가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온라인을 통해서 형성된 (청년 시위자) 조직과 운동 역량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자발적 운동 참여자의 자발성에 근거한 시위 참여가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기 어려워서,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선거를 얘기하는 집단들에 의해서 자발적 운동이 오염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sinjenny97@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