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심장이식 대기자 의뢰가 공식적으로 올라오기 전에도 병동과 중환자실을 돌아본다. 말기 심부전 환자는 어느 순간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을 놓치면 이식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순간일 수 있지만, 그 환자에게는 영원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날도 회진을 돌고 있었다. 병동과 중환자실을 살피던 중, 한 젊은 환자에게 심실빈맥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해 초만 해도 심장 기능이 정상이었다던 환자였다. 그런데 3개월 사이 심장 기능은 급격히 떨어졌고, 위험한 부정맥이 반복되고 있었다.
환자를 보러 갔을 때 눈앞의 상황은 이미 위태로웠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몸은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혈압이 잘 잡히지 않아 여러 차례 측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곧 혈압계 알람이 병실 안을 크게 울렸다.
이미 두 가지 고농도 강심제를 정맥으로 투여받고 있었지만 혈압은 계속 낮았다. 심기능 저하와 반복되는 심실빈맥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 환자의 주치의는 따로 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상태를 확인한 뒤 주치의에게 연락해, 중증 심부전 팀으로 전과를 의뢰했다.
간호사에게 즉시 보고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 전달하고, 심전도 기록과 심장초음파, 혈액검사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숫자가 있었다.
바로 EF 22%다. 이 숫자는 심장이 이미 전신으로 충분한 혈액을 보내지 못한다는 신호였다. 그해 초 정상 심기능에서 3개월 만에 이 정도로 악화되고 심실빈맥까지 반복되는 상황은, 심장 사르코이드증이나 거대세포심근염 같은 염증성 심근질환을 강하게 의심하게 했다.
◇ 심실빈맥, 그리고 에크모가 먼저 필요했던 이유
환자는 평소 병원을 자주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웬만한 증상은 참고 지냈지만, 그날은 숨이 너무 차고 가슴이 아파 자신이 어떻게 진료실까지 왔는지 기억이 흐릴 정도였다고 했다. 3개월 전 검진차 본원에 들렀을 때만 해도 심전도도, 심장초음파도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전혀 달랐다. 심전도에서는 심실빈맥이 반복되고 있었다.
“심실빈맥이 계속 지나갑니다. 3개월 전 정상이었고 관상동맥도 정상이었던 분입니다. 단순 심근염이 아니라면, 부정맥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인 거대세포심근염이나 심장 사르코이드증 같은 염증성 심근질환을 의심해야 합니다. 먼저 에크모를 넣고,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도 함께 준비해야겠습니다.”
심실빈맥은 심장이 너무 빠르고 불안정하게 뛰는 위험한 부정맥이다. 특히 불과 몇 달 사이에 정상 심기능이 심한 심부전으로 변하고 심실빈맥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염증성 심근질환. 그중에서도 심장 사르코이드증과 거대세포심근염을 반드시 함께 생각해야 한다. 심장이 이미 펌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리듬이 반복되면, 언제든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환자에게는 원인 치료보다 먼저, 순환을 붙잡아 두는 장치. 즉, 에크모가 필요했다.
실제로 환자는 에크모 카테터 삽입을 위해 마취를 시작하는 순간 심정지가 발생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병동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며 중환자실로 내려오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심폐소생술은 모든 의료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지나야만 다음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이 환자에게 에크모는 회복을 보장하는 치료가 아니라, 다음 결정을 가능하게 한 최소한의 다리였다.
에크모 삽입 후 심장의 부담은 줄었고, 고용량 강심제를 줄일 수 있었다. 환자는 의식을 회복했고 인공호흡기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 24시간 심전도와 혈압을 보며, 심실빈맥이 다시 폭발하지 않는지, 다른 장기 기능이 버티는지 매일 확인해야 했다.
혈역학적으로 너무 불안정해, 심장 MRI나 FDG-PET, 심내막생검 같은 표준 진단 검사를 시행할 여유는 없었다. 임상 양상만으로 활동성 심장 사르코이드증으로 판단하고,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염증이 가라앉고 심장 기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심장은 회복되지 않았고 환자는 조금씩 더 나빠졌다. 센터장으로서 이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에크모를 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착시다. 에크모는 시간을 벌어 주지만, 그 시간이 곧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주가 넘도록 에크모를 유지했는데도 호전이 없었고, 결국 이식으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분명해졌다.
기증자 연락이 온 날, 센터의 시간은 더 빨라진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환자는 에크모를 2주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스테로이드 치료에도 심장 기능은 회복되지 않았다. 에크모 카테터 삽입 부위 출혈로 두어 번 가슴을 쓸어내린 날도 있었다. 안정이라는 말은 이 환자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에크모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뇌사 장기기증자 연락이 왔다. 이식센터장에게 이 연락은 감사와 긴장이 동시에 오는 순간이다. 한 생명의 마지막 선물이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숙연해지고, 동시에 몇 시간 안에 수많은 결정을 끝내야 한다.
심장이식은 단순히 수술 날짜를 잡는 일이 아니다. 환자의 현재 상태, 기증 심장의 적합성, 적출팀 이동 경로, 수술실 상황, 마취팀과 중환자실 준비, 심장혈관흉부외과 일정, 그리고 장기의 허혈시간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그날 심장혈관흉부외과에는 이미 큰 수술이 여러 건 예정되어 있었다. 응급수술이 잦은 병원에서는 늘 이런 일이 생긴다.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나” 싶으면 응급이 생기고, 회식이나 회의가 잡힌 날에는 이상하게 더 바빠진다. 외래 환자가 많이 밀린 날에도 정신없이 바쁜데, 그런 날에 꼭 이식이 생긴다. 그날도 수술 일정을 맞추기 위해 여러 차례 상의가 이어졌다.
“이식이 더 지체되면 다른 장기 기능까지 나빠져, 결국 심장이식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반복된 논의 끝에 적출 시간이 정해졌고, 이식팀은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기증자 병원이 3권역, 즉 경상도 지역에 있어 적출팀의 이동시간이 가장 큰 변수였다. 심장은 다른 장기보다 시간에 민감하다. 가능한 한 빠르고 안전한 동선이 필요했다.
“적출팀 복귀 차량, 기증 병원 정문 앞에 사설구급차 대기 중입니다.”
그렇게 적출팀은 비행기를 타듯, 그리고 다시 구급차를 타고 날아오듯 병원으로 돌아왔다. 센터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보고 있었다. 환자의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새 심장이 가장 좋은 상태로 도착하도록,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 이식 후 조직에서 확인된 이름, 사르코이드증.
심장이식수술에서는 기능을 잃은 기존 심장을 꺼내고, 기증자의 새로운 심장을 연결한다. 꺼낸 심장은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질환 확인과 연구 목적의 조직검사에 사용된다. 이 검사는 때로 환자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마지막 단서를 준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던 진단이 적출된 심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 경우도 있다.
임상적으로 강하게 의심했던 진단이었던 심장 사르코이드증으로 확인되었다. 병리과 교수님은 조직 소견을 확인하자마자 사진을 보내 주셨다. 매우 광범위하고 심한 활성 육아종성 염증이 보였다. 스테로이드 치료에도 심장이 회복되지 않았던 이유를 보여 주는 소견이었다.
“산 사람 중에 이렇게 심한 사르코이드증은 처음 봅니다.”
이식은 끝이 아니라, 더 긴 관리의 시작이다. 심장이식이 끝났다고 해서 이 환자의 치료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식센터의 관점에서는 그때부터 더 긴 여정이 시작된다.
일반적인 심장이식 환자도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사르코이드증은 전신 질환이다. 심장을 교체했다고 해서 면역질환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폐·신경계·눈·피부 등 다른 장기에 침범이 없는지 장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또한, 이 환자는 이식 후 감염이 생기더라도 면역억제제를 무작정 줄이기 어려울 수 있다. 사르코이드증의 활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치료가 더 오래, 더 세심하게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면역억제제를 줄이면 감염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거부반응이나 사르코이드증 조절에는 불리할 수 있다. 반대로 면역억제를 유지하면 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 균형을 잡는 것이 이식 후 치료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식센터는 수술이 끝난 뒤에도 환자를 계속 본다. 혈액검사, 심장초음파, 조직검사, 약물 농도 확인, 감염 평가, 다른 장기 증상 확인,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생활 교육까지 이어진다. 이식은 한 번의 수술이지만, 이식 치료는 매일의 관리다.
이 환자를 떠올리면 한 장면만 기억나는 것이 아니다. 회진 중 들은 심실빈맥 소식, 그해 초 정상이었던 심기능이 3개월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 EF 22%라는 숫자, 사르코이드증을 의심하며 에크모를 먼저 넣기로 한 결정, 에크모 삽입 직전의 심정지, 스테로이드에도 회복되지 않던 2주 넘는 시간, 적출팀의 이동시간을 계산하던 회의,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보호자의 얼굴, 그리고 조직검사 사진까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심장이식은 한 명의 의사가 해내는 일이 아니다. 회진 중 위험 신호를 놓치지 않은 의료진, 반복되는 심실빈맥에 즉시 대응한 병동과 중환자실팀, 신속하게 에크모를 시행한 시술팀, 활동성 사르코이드증 가능성을 두고 치료와 이식 시점을 함께 판단한 심부전·이식팀, 수술 일정을 조율한 심장혈관흉부외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장기를 안전하게 가져온 적출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연결한 이식코디네이터가 함께 만든 결과다.
무엇보다 이식은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의 숭고한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식센터장으로서 가장 깊이 새기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는 한 생명의 마지막 선물이 다른 생명의 내일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심장 사르코이드증으로 3개월 만에 심장이 무너지고, 심실빈맥으로 생명이 위태로워졌던 환자는 새 심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식은 끝이 아니다.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이식센터에도, 이제부터는 새로운 심장과 함께 살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 심장초음파와 EF
심장초음파는 심장의 구조와 기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침습 검사다. 조영제나 방사선 노출 없이 반복 검사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EF, 즉 좌심실 박출률은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혈액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내보내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일반적으로 정상 범위는 약 50~70%로 보며, 40% 이하이면 심장 기능 저하와 심부전을 의심한다. 이 환자의 EF 22%는 심장이 이미 전신으로 충분한 혈액을 보내지 못하는 상태임을 뜻했다.
◇ 에크모와 심장이식 대기 등록
에크모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보조하는 장치다. 말기 심부전이나 심인성 쇼크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회복 또는 이식까지 시간을 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심장이식 대기자 등록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환자의 심장 상태, 다른 장기 기능, 감염 여부, 의식 상태, 가족 동의, 수술 가능성, 이식 후 관리 가능성까지 동시에 검토하는 과정이다. 특히 에크모 상태에서 2주 이상 호전이 없으면, 기계 보조가 버틸 수 있는 시간 안에 이식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심장내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중환자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감염내과, 병리과, 이식코디네이터, 간호팀이 함께 움직여야 완성된다.
◇ 심장이식에서 허혈시간이 중요한 이유
허혈시간은 기증자의 몸에서 심장이 적출된 뒤, 수혜자의 몸에서 다시 혈류를 공급받기 전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심장은 산소 공급이 끊기면 세포 손상이 빠르게 진행된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식 후 심근 기능 회복이 어려워지고, 초기 이식 심기능부전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심장이식에서는 적출팀 이동, 수술실 준비, 마취 시작, 수혜자 심장 제거와 새 심장 봉합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시계 안에서 움직인다.
◇ 사르코이드증이란?
사르코이드증은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전신성 육아종성질환이다. 면역반응 이상으로 여러 장기에 육아종이라는 염증성 덩어리가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흔하게는 폐를 침범하지만, 피부·눈·신경계·심장 등 다양한 장기에 생길 수 있다. 심장을 침범하면 부정맥, 전도장애, 심부전, 심정지 같은 위중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부는 자연 호전되기도 하지만, 장기 침범이 있거나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활동성 심장 사르코이드증은 염증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이때는 약물 치료로 염증을 누르고 심장 기능 회복을 기대하지만, 일부 환자는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심부전과 부정맥이 악화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