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영끌 늘며 회생신청 증가…실무준칙 통일해 판결기간 줄여야

사회

이데일리,

2026년 6월 15일, 오전 05:37

[이데일리 남궁민관 이지은 백주아 기자] 20대 중반 대학생 A씨는 최근 주식과 가상자산 투자 열풍 속에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소위 ‘포모’(놓치거나 제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을 겪었다. 주식 텔레그램 리딩방에 가입한 그는 제2금융권 대출과 카드론까지 끌어 썼지만 5000만원의 빚만 남았다. 부채 탕감을 위해 인터넷 대출 광고를 찾은 그는 대출업자에게 은행 계정 정보를 넘겼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결국 그는 금융범죄 관련 수사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회생도 신청했다.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B씨는 서울 외곽의 신축 빌라에 전세보증금 2억 5000만원을 맡기고 신혼집을 마련했다. 전세자금대출에 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까지 가입해 안전한 계약이라고 믿었지만,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이른바 ‘빌라왕’ 사건과 연관된 임대사업자로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전세금은 묶인 반면 2억원의 대출 상환 부담은 그대로 남게 된 것. 이혼까지 고민한 B씨 부부는 결국 개인회생을 선택하며 재기를 노리고 나섰다.

14일 법조계에서는 최근 다양한 채무상황에 직면한 국민들의 회생신청이 늘어나면서 전국 법원별 전문성 편차 등 오래된 과제를 해소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원회생법원장 출신 법무법인 로백스 김상규 대표변호사는 “현장에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개인회생 신청인 구성”이라며 “과거에는 사업 실패나 실직으로 인한 중장년층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청년층과 근로소득자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주거비 부담, 투자 손실, 신용대출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개인회생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도산전문변호사회 부회장인 법무법인 선경 박시형 대표변호사는 “예전에는 낙인효과를 무서워해 회생·파산을 쉽게 신청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회생신청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올해 개인회생신청 16만건 넘어설 듯…5년 만 2배↑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021년 8만 1030건에서 지난해 14만 9146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역대 최다인 16만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개인회생의 문을 두드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단 점은 우려할 대목이다.

서울회생법원을 기준으로 한 ‘2025년도 개인회생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개인회생을 접수해 절차개시결정을 받은 2030세대는 2022년 6913명에서 2023년 9171명으로 32.7%나 증가했다. 지난해(8974명)까지 90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금융권이 대출을 억누르면서 돈을 구할 방법이 요원해짐에 따라 개인회생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란 게 법조계 분석이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채무자들은 어려워지면 더 높은 이자율의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을 대환하면서 버틴다”며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되는 순간 개인회생을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회생신청 증가와 가장 밀접하게 연동되는 데이터가 바로 이자율”이라며 “최근 가계대출 규제와 전세자금대출 제한 등 대출규제 강화에 더해 이자제한법 시행으로 더 높은 이자율로라도 돈 빌릴 데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개인회생 수요는 이같이 빠르게 늘고 있는 반면 관련 제도 개선은 더디다는 점이다. 전국 법원별 편차를 비롯해 암암리 활동하는 불법 브로커 등 비정상적 수임시장 등 개선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법원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때란 법조계 목소리가 커진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는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 보험 적립금이나 증권 계좌 등을 담보로 투자하려는 수요까지 늘자 금융당국이 차단에 나섰다. 사진은 12일 서울의 한 거리에 부착된 카드 대출 광고물. (사진= 노진환 기자)
◇인천은 3개월·의정부는 10개월…법원별 처리기간 제각각

법원행정처가 도산법연구회에 의뢰해 최근 발간한 ‘개인 회생 절차의 지역 편차 현황 및 해소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법원별 개인회생 접수부터 개시결정까지 소요시간은 최대 3배 가까운 편차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101일)·인천(105일)·춘천(108일)은 3개월 안팎의 기간이 소요된 것과 달리 광주(143일)·서울(151일)·수원(154일)은 5개월 안팎, 대구(282일)·강릉(283일)·의정부(287일)는 10개월에 육박했다.

전체 채무 중 개인회생을 통해 갚아야 하는 돈을 의미하는 변제율 역시 천차만별이다. 법이 인정하는 최저변제율은 3~5%이지만 10% 이상을 요구하는 법원이 상당수였다. 도박이나 사행성 행위에 대한 일종의 징벌로 최고 80%에 이르는 변제율을 내세운 곳도 있다.

도산법연구회는 “도박이나 사행성 행위에 대한 징벌로 변제율 상향을 요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법의 공정한 집행이라는 관점에서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바른의 조동현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도산전문변호사회 회장)는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빚 독촉을 몇 달 더 견뎌야 하는 건 구조적인 모순”이라며 “거주지에 따라 변제율이 널뛰기로 뛰는 ‘복불복’ 판결도 사법 신뢰를 무너뜨린단 점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산법연구회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법관별 전문성 차이 △회생위원의 역량·기준 차이 △통일된 실무준칙 부재 등을 꼽았다.

조은결 법무법인 와이케이 변호사는 “회생위원이 거의 모든 사건을 주도적으로 처리·보정 후 법관에게 보고 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예산문제 등으로 회생 전문 법관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면 변제율이나 기각사유 등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에서라도 통일된 실무준칙을 마련하고 회생위원에 대한 법관 통제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변호사가 연대보증 후 대부업체에 알선…또 다른 빚더미에 앉아

개인회생 관련 과제는 비단 법원에 머물러있지 않다.

박기태 변호사는 “변호사가 연대보증을 서고 대부업체로부터 비싼 수임료 대출을 받은 뒤 이를 채권목록에 누락하는 방식의 불법 행위도 벌어진다”며 “신용회복위원회나 공공기관이 바우처 형태로 먼저 지원하고 회생절차에서 우선변제채권으로 회수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도산법연구회는 “변호사나 법무사의 사건처리 능력에 따라 수임이 이뤄지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신청대리인(변호사·법무사)의 채무자 면담 의무 부과 △채무자 재산 및 소득 조사에 대한 신청대리인 책임 강화 △명의 대여자에 대한 실효적 처벌 △보조인의 실명화와 교육 △신청대리인별 사건처리 현황 공개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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