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 뉴스1 윤일지 기자
세계 공급망 불안과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이 맞물리면서 구리·알루미늄·아연 등 비철금속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과 관세 장벽, 주요국의 자원 보호주의가 원료 수급을 흔드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금속 수요를 밀어 올리는 구조다.
구릿값 1년 새 46%↑…중동 변수 외 AI·전기화 영향 多
15일 한국광해광업공단과 런던금속거래소(LME) 자료에 따르면 구리 가격은 지난해 3월 톤당 8825달러에서 올해 3월 1만2920달러로 약 46% 올랐다. 같은 기간 알루미늄 현물 가격도 약 24.8% 상승했고, 니켈, 아연, 주석 등 다른 산업 금속도 전반적으로 높은 가격 흐름을 보였다.
단기적으로는 중동 리스크가 변수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의 긴장이 길어지고 있어서 원료와 에너지 운송 비용이 오르고, 비철금속 제련·가공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와 부원료 가격도 함께 흔들렸다.
중장기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은 AI와 전기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2배 이상 늘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가장 큰 증가 요인으로 꼽혔고, 데이터센터는 2030년 전 세계 전력소비의 3%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전력망 확충도 구리와 알루미늄 수요를 키우고 있다. IEA는 전력망이 에너지 전환 관련 광물 수요의 핵심 축이며, 지속가능발전 시나리오에서 전력망용 구리 수요가 2020년 500만톤에서 2040년 1000만톤에 가깝게 늘고, 알루미늄 수요도 900만톤에서 1600만톤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봤다. 구리는 지중·해저 케이블과 변압기에, 알루미늄은 가공성과 무게 이점 때문에 가공선과 케이블 등에 쓰인다.
국내 수출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비철금속협회 자료에 따르면 3월 국내 비철금속 수출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6% 늘어난 25만9800톤, 수출액은 29% 늘어난 14억7700만달러로 집계됐다. 알루미늄과 구리 수출 물량은 각각 10.6%, 11.1% 증가했고, 두 품목이 전체 비철금속 수출액의 78.3%를 차지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3월 전체 수출도 반도체와 첨단산업 수요를 뒷받침한다. 3월 한국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한 861억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반도체 수출은 328억달러로 151.4% 늘었다. 비철금속 수요가 반도체·전력설비·전장 부품 공급망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폐금속 활용 '순환 공급망' 중요도 커져…기후부도 '유도 중'
수요가 늘수록 원료 확보 방식도 중요해진다. IEA는 '2025년 핵심광물 전망'에서 구리 수요가 2040년까지 약 30% 늘 것으로 봤고, 이미 발표된 프로젝트만으로 2035년 구리 채굴 공급이 수요보다 30% 부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망과 전기화 수요가 커지는 데 비해 신규 광산 개발은 느리고, 광석 품위 저하와 투자비 상승도 공급 확대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폐금속을 다시 산업 원료로 쓰는 순환형 공급망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4월 폐아이씨 트레이(IC Tray)와 폐석재를 순환자원으로 추가 지정하는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폐IC Tray는 반도체 후공정에서 집적회로를 보호·운반하는데 쓰이는 합성수지 자재다.
현재 순환자원으로는 폐지, 고철, 폐금속캔, 알루미늄, 구리, 전기차 폐배터리, 폐유리, 폐식용유, 커피 찌꺼기, 왕겨·쌀겨 등 10개 품목이 지정·운영되고 있다. 순환자원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준을 지키는 경우 별도 신청 없이 폐기물 규제를 면제받을 수 있다.
알루미늄은 순환경제 측면에서 대표적인 소재로 꼽힌다. 국제알루미늄협회(IAI)는 알루미늄 재활용이 1차 알루미늄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의 약 95%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19년 기준 1차 알루미늄 생산에는 톤당 186GJ의 1차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재활용 알루미늄은 톤당 8.3GJ 수준이었다.
알루미늄 재활용 배출량 29분의 1…원료확보·장기계약이 경쟁력 '변수'
탄소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IAI는 2022년 전 세계 1차 알루미늄 생산의 탄소발자국을 온실가스상당량톤당 15.1톤CO2e로 제시한 반면, 알루미늄 스크랩을 재활용해 생산하는 과정의 배출량은 톤당 0.52톤CO2e로 봤다. 다만 이는 1차 알루미늄은 광산부터 주조까지, 재활용 알루미늄은 스크랩 처리 공정 중심으로 본 수치라 단순 비교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규제 환경도 저탄소 소재 수요를 키우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비료, 전기 등을 대상으로 하며 2026년부터 본격 단계에 들어갔다. EU 핵심원자재법도 알루미늄 가치사슬을 전략·핵심 원자재 범주에서 다루고, 2030년까지 전략 원자재의 역내 재활용 역량을 연간 소비량의 2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기업인 노벨리스의 한국법인 노벨리스코리아가 영주와 울산 사업장을 중심으로 폐음료캔과 산업 스크랩을 활용한 재활용 알루미늄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영주 공장은 연간 180억개 이상의 폐음료캔을 재활용하고, 울산 신규 시설까지 포함해 국내에서 연간 47만톤 규모의 저탄소 알루미늄 재활용 생산 역량을 확보했다.
구리 분야에서는 풍산과 LS MnM 등이 전력망과 전장 부품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풍산은 전기동을 가공해 신동 제품과 고기능 동합금 소재를 생산하고, LS MnM은 연간 60만톤 규모의 전기동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동정광 장기 공급계약과 동 스크랩·전자폐기물 활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아연 분야에서는 고려아연이 온산제련소를 기반으로 아연과 은·인듐·게르마늄 등 유가금속 회수 역량을 키우고 있다.
업계는 비철금속 시장의 핵심 경쟁력이 단순 생산량이 아니라 공급망 안정성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전기차, 반도체, 방산 산업의 성장으로 금속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재활용 원료 확보와 저탄소 생산, 품질 인증, 장기 공급계약 체계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ace@news1.kr









